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16:21-28 / 사람의 일 하나님의 일

신의피리 2024. 3. 7. 09:07

마태복음 16:21-28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26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27-28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

 

예수께서 드디어 제자들에게 자신의 미래 계획을 밝히셨다.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며, 거기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3일째 살아날 것이라 한다.

 

베드로는 예수의 멱살을 잡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대든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가서 죽는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 아닌가.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나서며 기대했던 것은 이게 아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까지는 좋다. 기대했던 바요, 결전의 날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고난을 당할 수 있다. 이 또한 예상한 바다. 그러나 패배와 죽음이 아니다. 로마세력과 결탁하여 나라를 팔아먹고 백성들을 이중삼중 수탈해가는 권세자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 성전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정통성도 없고 향락에 빠져 사는 무능하고 악한 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다윗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모세의 기적이 펼쳐질 것이며, 이 영광스러운 일을 꿈꾸며 여기까지 왔는데, 죽는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의 생각은 사람의 일을 도모하는 거라 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정반대다. 목표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다. 너무 이상적인 것 같고, 너무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이 어찌 예수님의 계획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어려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사용하신 목숨이라는 단어가 가진 깊이와 넓이 때문이다. 목숨(프쉬케)이란 무엇인가?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데 도리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따르다가 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결국 찾게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신다.

 

프쉬케는 영어로 ‘breath’로 번역된다. , ‘the breath of life’라 할 수 있다. 프쉬케는 또한 ‘soul’(영혼)으로도 번역된다.

 

‘the breath of life’를 얻기 위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결국 ‘soul’을 잃을 것이고, 예수를 따르다가 ‘the breath of life’를 잃게 되는 사람은 결국 ‘soul’을 얻게 되는 것.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떤가?

 

예수를 믿고 따라나섰다. 추구하는 바가 달라졌다. 이 세상에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물질의 넉넉함, 명성, 힘과 영향력,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인정, 이런 것들을 최대한 확대하기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활용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의 삶의 발자취를 좇을수록 그분이 추구하신 목적과 방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인지하며, 우리 존재가 예수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 섬기는 삶, 진리와 생명의 길, 더불어 사는 사회, 죄와 죽음에 매이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라고 소망하는 삶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하고,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목숨을 버리고 부인해야 참된 목숨을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나도 이제야 조금 알 듯하다.

 

주님,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주목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이 더 옳고, 더 깊고, 더 높고, 더 내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정욕과 탐심을 부인하고, 주님의 사랑의 길을 좇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