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남편은 쓰레기 통이다

신의피리 2007. 2. 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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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이 꽉 찼나보다. 쓰레기를 받을 자리가 없다. ㅜㅜ 쓰레기 비우고 와야지...
아래의 글은 2005-12-9 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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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과 한집살이 하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특히나 어머니께서 며느리에게 좀 거칠게 말씀하신다거나, 이런 저런 일로 부려먹을 때(?) 괜히 아내 편 들었다가 한 소리 듣기 쉽상이다. 워낙 깐깐하고 대가 쎈 어머니시라, 아들인 나도 그런 얘기 쉽게 못한다.

사람들 앞에서 싹싹하고 거절 못하고 항상 밝은 얼굴로 대하는 아내, 알아서, 앞서서 다 뒤치다꺼리 하고 난 후, 늦은 밤이 되면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리고는 쉬임없는 불평이 쏟아진다.

"당신하고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왜 내가 이 고생해야 돼?"

"당신이 먼저 고생을 자초하는 것도 있잖아. 힘든 건 힘들다고, 안되는 건 안된다고 얘기해"

"말도 안돼는 소리 하지 마"

"그러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잔이라면 그냥 살아야지. 앞에선 웃는 낯으로 하고 뒤에서 불평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

"..."

반복되는 대화다. 힘든 걸 쏟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도와준답시고 듣다가 한두마디 던지면 오히려 아내의 화만 돋구는 미련한 남편...

'어차피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살 순 없나?' 내 딴엔 이런 소릴 한다. 하기야 답이 없이니 당신 마음이나 고쳐 잡아라, 란 소리밖에 할 말이 없는 건 당연하다.

어젯밤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오랜만이다. 듣다듣다 답답해지고, 서로의 감정은 더 멀어져만 가고... 그러다가 문득, 컴퓨터 데스크탑에 있는 '휴지통'이 떠올랐다. 쓸데없이 컴퓨터 용량만 늘리는 것들은 쓰레기통으로 던져넣고 삭제를 한다. 정기적으로 종종 그리 해줘야 컴퓨터가 가벼워진다. 빨라진다. 제기능을 한다.

아내의 삶에서 남편은 '휴지통'이 되어 줘야 하지 않을까? 여자로 산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남자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일도 하고, 자녀도 양육하고, 시부모님도 섬기고... 그렇게 살면서 쌓이는 감정들 중에 휴지통으로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을텐데, 어디가서 술을 마시면서 풀수도 없는 거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오히려 더 쌓일테고, 돈이 많아서 쇼핑과 소비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능한 것은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길 바랄 뿐이어늘, 덧붙여 아내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남편이 있어야 하거늘, 새삼 남편의 역할은 아내의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휴지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보, 말 해. 내가 잘 들을게. 나한테 다 버려. 그게 내 역할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