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TNT

꽃 한 다발의 행복

신의피리 2015. 5. 29. 16:40

지난 목요일 저녁 퇴근길에 소국한 다발을 사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기념일? 아닙니다. 생일? 역시 아닙니다. 그냥이었습니다! 아마도 결혼 12년 만에 처음 해본 어색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 그런데 결과는 생각 그 이상으로 훨씬 좋았습니다. 아내는 연실 꽃을 들고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페북 친구들에게 지체없이 이 행복을 자랑합니다. 늦은 밤엔 꽃을 조그만 단지 세 갈래로 나눠 꽂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독서를 합니다. 근래에 본 모습 중에 가장 행복해 보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행복이 가까이 있는데, 왜 이걸 여태 몰랐지?’

 

사실 소국을 사들고 간 이유가 있긴 합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아내가 지나치는 말로 나는 이 계절에 소국이 참 좋아. 나를 소국에 동일시하나 봐.’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지난 몇 년간 이 계절에 몇 번 들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지요. 감성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낮고 여인의 말을 못 알아듣는데 아주 일가견이 있는 둔감한 이 남자는 이제야 그 뜻을 깨닫고, 퇴근길에 어색한 표정으로 꽃가게에 들려 꽃을 산 것입니다. 역사적인 날이지요!

꽃 한 다발 때문에 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내의 행복지수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웬만한 실수와 무심한 태도에도 아내는 그냥 패스! 합니다. 갑자기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제 영혼에도 꽃이 만발한 듯 향기가 납니다. 이유 없이 그저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엇이든 퍼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차오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이 새록새록 달고 오묘하게 다가옵니다.

 

2011/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