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을 걷다가 철새들 사진을 찍게 됐다. 그러나 멀리 있는 새들은 휴대폰 카메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를 최대로 당겨 찍어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쌍안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집에 와서 자연스럽게 쌍안경 검색을 했다. 일주일 후, 나는, 난생처음으로, 나 자신의 순수한 취미를 위해, (필요가 아니라 취미!) 거금을 들여 쌍안경을 주문했다.
니콘 PROSTAFF P3 8*40
chatGPT가 목회자 입문용으로 추천해줬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물어보니, 이게 딱 좋겠다 한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기분으로 퇴근하자마자 쌍안경을 들고 경안천으로 뛰어나간다.


앗! 집결지로 떠난 줄로 알았던 큰고니들이 다시 나타났다. 아직 멀리 떠날 시간이 아니란 걸 알고 놀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 그렇지 2월 말 3월 초에 떠난다고 했으니 아직 좀 더 있어야 한다. 자, 이때다. 쌍안경을 들고 큰고니들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다.


큰고니 두 마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에 있던 작은 철새들은 청둥오리 수놈들과 암놈들이다. 이걸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큰고니들을 볼 수 있다. 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지만, 쌍안경으로 관찰한다. 한 녀석이 머리를 물속에 한참을 처박고 있다가 힘차게 고개를 든다. 입에 뭔가가 가득 물려 있다. 미꾸라지 같아 보였는데, 순식간에 입으로 들어간다. 자연 다큐 영상에서 보던 걸 이렇게 눈으로 보게 된다.

내가 제일 귀여워하는 비오리 한 마리가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쌍안경으로 보니, 선명하게 구분이 된다. 검은 머리, 흰 몸통이다. 자세히 보니 더 귀여워 보인다.

멀이 있는 전봇대 위에 까마귀 크기 만한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까마귀나 까치는 확실히 아니다. 평소였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텐데, 내겐 쌍안경이 있다. 짜잔! 황조롱이다. 며칠 전에 경안천 건너편에서 보았는데, 이쪽에 앉아 있다. 좀 더 가까이에 가서 보려고 하니, 휙 날아간다. 쌍안경을 들고 저 녀석을 추적한다. 멋지게 날아간다. 갑자기 공중에서 멈췄다. 퍼덕이더니 아래로 쏜살같이 돌진하다 다시 중간에 멈춘다. 정지 비행이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다. 두 날개를 폈다가 접었다가 반복한다. 꼬리를 폈다가 접었다가 반복한다. 빠르게 내리꽂다가 순간 정지 하더니, 다시 옆으로 휘리릭 날아간다. 그 옆을 기러기 세 마리가 휙 지나간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책 읽기, 걷기는 사실 취미라고도 할 수 없다. 이제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존 스토트의 <새, 우리들의 선생님>을 다시 읽고 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이었다니. <한국의 새 생태와 문화>라는 도감을 하나 구입했다. 틈틈이 살펴보고 있다. 조만간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새 관련 본문을 샅샅이 조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