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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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강원도 인제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다단하다. 쓸쓸함이라고 해야 할까, 애달프고 구슬프다. 1993년 1월 8일, 눈 덮인 인제에 첫 발을 내디뎠다. 1월 5일 강원도 춘성 102 보충대에 입소하고 3일 후 22사단을 배정받아 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펼쳐질 군생활에 대한 두려움, 홀로 감당해야 할 쓸쓸함, 고향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출발하는 날 눈이 내렸다. 크고 넓은 소양강을 구불구불 돌아 마침내 고개 하나 넘으니 마녀가 살 것 같은 산속 마을이 나타났다. 잠시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땐 거기가 어딘지 몰랐고, 나중에야 인제라는 것을 알았다. 강원도 깊숙한 산골 훈련소로 가던 길 중간, 잠시 쉬었던 곳이 인제였다. 처..

시편 5:1-12 /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지휘자를 따라 관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나의 탄식 소리를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주님, 새벽에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새벽에 내가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주님께서는 죄악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악인은 주님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교만한 자들 또한 감히 주님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을 누구든지 미워하시고,거짓말쟁이들을 멸망시키시고, 싸움쟁이들과 사기꾼들을 몹시도 싫어하십니다.그러나 나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집으로 나아갑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

렉시오 디비나 2024.05.06 6

시편 4:1-8 / 주님은 내 기도 들어주신다

저녁 기도지휘자를 따라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나를 막다른 길목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너희 높은 자들아, 언제까지 내 영광을 욕되게 하려느냐?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며, 거짓 신을 섬기겠느냐? (셀라)주님께서는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각별히 돌보심을 기억하여라. 주님께서는 내가 부르짖을 때에 들어 주신다.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 (셀라)바른 제사를 드리고, 주님을 의지하여라."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렉시오 디비나 2024.05.04 3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수많은 행복과 불행의 근거가 되는 주어와 수많은 생의 사연이 담긴 동사가 강력하게 연결됐다. 주어와 동사를 연결 짓는 드러난 사유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소설에서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 소설은 이 강렬한 첫 문장 이후, 3일간 장례식장을 묘사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일한 상주인 50대를 맞이한 딸의 시각에서 조문하러 온 손님들을 관찰한 이야기다. 모든 조문객은 아버지의 지인들이다. 작가는 조문객과 아버지의 직간접적인 사연을 하나둘 소개하면서 빨치산 낙인 찍힌 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한다. 아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버지의 진면목이 하나둘 드러난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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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안식27-2] 한라산 등반

내 몸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인식되고 있다. 종아리가 아프다. 알이 살짝 배긴 것 같다. 허벅지도 뻐근하다. 이유가 뭘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사진이 합성된 것일까?  5시 20분 잠에서 깬다. 사실 제대로 잠에 들지도 않았으니 깼다고 하기도 그렇다. 여하튼 대충 씻고 짐을 꾸린다. 생수 3개, 우비, 간식, 스틱, 이거면 되는 건가?6시 출발한다. 차의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는다. 바로 저기, 저 멀리 있는 저 산, 저 봉우리, 매일 보던 바로 그 한라산에 오늘 오를 예정이다. 과연 오늘 하루가 지나갈 것인가? 나는 해낼 수 있을까? 7시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매점에서 김밥과 국수로 아침 배를 채운다. 7시 ..

[제주안식18] 차귀도에 가봐야 한다

오늘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아주나쁨이다. 이틀 연속 숙소에 머물 수 없다. 다행히 오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오늘은 차귀도(遮歸島)에 들어간다. 차귀도는...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면적 0.16㎢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고산리에서 해안 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자구내 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무인도이다. 죽도·지실이섬·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섬 중앙은 평지이다. 신평리에서 용수리 방향으로 걸을 때, 모슬포항에서 고산리 방향으로 걸을 때 계속 차귀도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 남섬이 유독 많이 연상되는 섬이라, 꼭 들어가..

[제주안식28]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벌써 마지막 밤이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한다. 집에 갈 시간이다. 창밖으로 제주 바다가 보인다. 오랫동안 이 장면은 하나의 그림이 돼서 내 마음 미술관에 오래 걸릴 것이다.  한라산 등반 여파가 있다. 밤 잠을 설쳤다.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미지근한 물 한 컵 마신다. 보이차를 내린다. 큐티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다. 그래놀라를 우유에 타서 먹는다. 씻는다. 독서를 한다. 오늘은 주일이라 교회에 가야 한다. 어제 공항에서 렌트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걷지 않는다. 다리에 알이 배겨 걷지 못한다. 걸어서 1시간 10여분 가는 시골길을 차로 10분 만에 간다. 조수교회 주차장부터 예배당 입구까지 한 대여섯 분이 인사를 하신다. 입구에 그 권사님이 계신다. "아직 안가셨..

[제주안식25] 제주 카페 순례

카페가 쉼과 재활의 공간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것은 2000년 때부터다. 아내가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 음악치료사로 취업했다. 내가 기윤길 간사를 할 때인지 그만두었을 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공원 동쪽 롯데타워 인근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서점은 기다리기 좋은 장소였고, 사우나도 나름 괜찮았다. 우연찮게 '할리스'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란 자고로 달달해야 하는데, 자판기 커피 또는 맥심만 마시던 내게 할리스 아메리카노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것 같다. 아내를 기다릴 때 할리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으니 기다린다는 사실을 종종 잊기도 했다.  그 이후로 여러 프랜차이즈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