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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그 쓸쓸함에 대하여

신의피리 2024. 5. 6. 19:41

강원도 인제 내린천/소양강

 

강원도 인제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다단하다. 쓸쓸함이라고 해야 할까, 애달프고 구슬프다. 1993년 1월 8일, 눈 덮인 인제에 첫 발을 내디뎠다. 1월 5일 강원도 춘성 102 보충대에 입소하고 3일 후 22사단을 배정받아 버스를 타고 고성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펼쳐질 군생활에 대한 두려움, 홀로 감당해야 할 쓸쓸함, 고향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출발하는 날 눈이 내렸다. 크고 넓은 소양강을 구불구불 돌아 마침내 고개 하나 넘으니 마녀가 살 것 같은 산속 마을이 나타났다. 잠시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땐 거기가 어딘지 몰랐고, 나중에야 인제라는 것을 알았다. 강원도 깊숙한 산골 훈련소로 가던 길 중간, 잠시 쉬었던 곳이 인제였다. 처연했다.

 

강원도 고성 민통선 위에서 군생활을 하다 휴가를 가려면 간성읍까지 군용차를 타고 나와야 했다. 간성에서 버스를 타고 진부령을 넘어 서울로 향한다. 인제를 지나고 홍천을 지나고 춘천을 지나고 가평을 지나고 양평을 지나면 서울 상봉터미널로 들어온다. 처음 출발할 때는 나를 포함해 승객이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중간에 군인들이 하나둘 타기 시작한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군대로 복귀할 때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탈 때는 승객이 많았다. 양평에서 군인 몇이 내린다. 홍천에서도 몇이 내린다. 인제에서 대부분 내리면 거의 군인은 나 혼자 남았다. 나 혼자 남게 되었음을 깨닫는 곳이 강원도 인제였다. 

 

세월이 흘렀다. 강원도 속초에 놀러가며 지날 때 인제를 거쳐간다. 이젠 읍내 외곽길로 돌아가니 옛날 기억은 갈수록 흐릿해진다. 내린천에서 래프팅을 하고, 인제원대리자작나무숲을 다녀오면서도 인제 읍내를 스쳐간다. 그러나 항상 쓸쓸한 기운이 잠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것은 똑같다. 강원도 인제는 내게 처연한 감정을 생생하게 체험케 하는 곳이다. 

커피홀베이커리 인제스테이점

 

 

내린천이 소양강으로 넓어져서 인제읍내 서쪽으로 흘러가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이틀을 홀로 머문다. 아픈 어머니는 인제 신남에서 사역하는 절친 목사님 댁에 계신다. 어머니 요양차 모셔다 드리고 나는 인제읍내로 와서 숙소를 잡았다. 처음 인제읍에 발을 내디딘 지 30년이 넘었건만 애달프고 구슬픈 감정은 변함이 없다. 아니 거기에 더 날카로운 감정 하나가 더해져서 마음을 베고 지나갔다. 

 

1993년 1월 5일, 102보충대에서 내 뺨을 어루만지며 '아들, 잘 있어, 엄마 간다' 하셨던 그 엄마는 노인이 됐고, 아주 미세한 치매도 시작됐으며, 힘겨운 노년의 길을 걷고 계신다. 어머니를 절친 목사님 댁에 2박 3일간 맡기고 나오다가 어머니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니, 여기가 '신남'이니까, 최고로 신나게 즐기세요. 저는 인근에서 기도하고 있을게요.'

 

쓸쓸함이라는 바람이 지나갈 때 제대로 맞서기엔 유머만큼 좋은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