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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미술관, 뿌리 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

신의피리 2024. 5. 7. 19:51

박수근미술관을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마침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다. 

 

미술을 볼 줄 아는 눈이 부족하다. 미술작품이 왜 훌륭한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림의 종류도, 도구의 종류도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동안 가봤던 대부분의 전시회는 다소 지겨운 일이었다. 흥미를 유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박수근미술관은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즐겁고 유익한 관람 아닌가 싶다. 미술관 건물 자체도 매우 건축학적으로 특이했다. 무엇보다도 박수근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시선을 잡아끌었다. 30~60년대 가난했던 우리 주변의 흔하디 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검은색 굵은 선이 단순하면서도 착한 심성들을 드러낸다.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나더러 똑같은 소재만 그린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생활이 그런데 왜 그걸 모두 외면하려는 걸까

 

예술은 고양이 눈빛처럼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주시하면서 그 안에 담긴 착함을 직시하고 포착하여 드러내는 것 아닌가. 의외였다. 대개 미술 천재들은 괴퍅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박수근은 가난하지만 매우 가정적이고, 착한 사람이었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그의 작품에는 교회나 십자가, 예수 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집 밖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항아리나 짐을 머리에 지고 걸어가는 여인, 아이를 등에 업은 소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할머니/아저씨들, 서민들의 반복되는 평범성일 뿐이다. 그런데 그 단순함 안에서 도덕적 선이 느껴진다. 힘없고 빽 없는 이들,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다 사라져 갈 일반인들, 그러나 일상을 사는 평범한 가난한 이들의, 그 평범한 동작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도록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보통이 아니다. 미술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다. 

 

박수근 화백이 마음에 담고 있었던 그 정신, 실은 매주 설교와 목회를 하는 내가 마음 안에 새겨놓은 정신과 유사하다.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을 창안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성도들의 평범한 말과 평범한 삶 속에 마르지 않고 흐르는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마음으로 포착하고 건져올려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내 설교와 사역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 일을 위한 나의 도구, 나의 언어, 나의 렌즈가 무척 가볍고 얄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