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수많은 행복과 불행의 근거가 되는 주어와 수많은 생의 사연이 담긴 동사가 강력하게 연결됐다. 주어와 동사를 연결 짓는 드러난 사유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소설에서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 소설은 이 강렬한 첫 문장 이후, 3일간 장례식장을 묘사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일한 상주인 50대를 맞이한 딸의 시각에서 조문하러 온 손님들을 관찰한 이야기다. 모든 조문객은 아버지의 지인들이다. 작가는 조문객과 아버지의 직간접적인 사연을 하나둘 소개하면서 빨치산 낙인 찍힌 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한다. 아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버지의 진면목이 하나둘 드러난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