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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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수많은 행복과 불행의 근거가 되는 주어와 수많은 생의 사연이 담긴 동사가 강력하게 연결됐다. 주어와 동사를 연결 짓는 드러난 사유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소설에서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 소설은 이 강렬한 첫 문장 이후, 3일간 장례식장을 묘사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일한 상주인 50대를 맞이한 딸의 시각에서 조문하러 온 손님들을 관찰한 이야기다. 모든 조문객은 아버지의 지인들이다. 작가는 조문객과 아버지의 직간접적인 사연을 하나둘 소개하면서 빨치산 낙인 찍힌 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한다. 아니 베일에 감춰져 있던 아버지의 진면목이 하나둘 드러난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

시편 3:1-8 /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시편 3편이른 아침 기도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지은 시주님,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나를 빗대어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는다" 하고 빈정대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셀라)그러나 주님, 주님은 나를 에워싸주는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시니,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셀라)내가 누워 곤하게 잠 들어도 또다시 깨어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나를 대적하여 사방에 진을 친 자들이 천만 대군이라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주님, 일어나십시오. 나의 하나님, 이 몸을 구원해 주십시오. 아,..

렉시오 디비나 2024.05.03 2

고통에 의미가 있는가

팔당물안개공원에서 양귀비를 보았다. 빨간 꽃잎 안에 검은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게 마약 성분이 있는 건지 아닌지 난 잘 모르겠다. 마약 성분이 있는 거라면 재배 금지 식물이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공원 길가에 한 송이 피어 있다면 마약 성분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천에 들꽃이 널렸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형형색색의 들꽃 보는 재미가 있다. 산책이 부른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양귀비를 보았다. 다른 꽃들에게 미안하지만 도드라지게 예뻤다. 양귀비는 매혹적인 만큼 치명적인 성분을 품고 있다. 그 부조화의 조화에 수긍이 간다.    몇 주 전, 제주 곶자왈 숲을 걷다 탱자나무를 보았다. 연푸른 숲속에 하얀 솜같이 하얀 꽃이 나무 위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들여다보니 ..

시편 2:1-12 / 누가 나의 왕인가

시편 2:1-12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내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마침내 주님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네가 그들을..

렉시오 디비나 2024.05.0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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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안식27-2] 한라산 등반

내 몸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인식되고 있다. 종아리가 아프다. 알이 살짝 배긴 것 같다. 허벅지도 뻐근하다. 이유가 뭘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사진이 합성된 것일까?  5시 20분 잠에서 깬다. 사실 제대로 잠에 들지도 않았으니 깼다고 하기도 그렇다. 여하튼 대충 씻고 짐을 꾸린다. 생수 3개, 우비, 간식, 스틱, 이거면 되는 건가?6시 출발한다. 차의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는다. 바로 저기, 저 멀리 있는 저 산, 저 봉우리, 매일 보던 바로 그 한라산에 오늘 오를 예정이다. 과연 오늘 하루가 지나갈 것인가? 나는 해낼 수 있을까? 7시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매점에서 김밥과 국수로 아침 배를 채운다. 7시 ..

[제주안식28]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벌써 마지막 밤이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한다. 집에 갈 시간이다. 창밖으로 제주 바다가 보인다. 오랫동안 이 장면은 하나의 그림이 돼서 내 마음 미술관에 오래 걸릴 것이다.  한라산 등반 여파가 있다. 밤 잠을 설쳤다.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미지근한 물 한 컵 마신다. 보이차를 내린다. 큐티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다. 그래놀라를 우유에 타서 먹는다. 씻는다. 독서를 한다. 오늘은 주일이라 교회에 가야 한다. 어제 공항에서 렌트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걷지 않는다. 다리에 알이 배겨 걷지 못한다. 걸어서 1시간 10여분 가는 시골길을 차로 10분 만에 간다. 조수교회 주차장부터 예배당 입구까지 한 대여섯 분이 인사를 하신다. 입구에 그 권사님이 계신다. "아직 안가셨..

[제주안식18] 차귀도에 가봐야 한다

오늘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아주나쁨이다. 이틀 연속 숙소에 머물 수 없다. 다행히 오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오늘은 차귀도(遮歸島)에 들어간다. 차귀도는...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면적 0.16㎢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고산리에서 해안 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자구내 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무인도이다. 죽도·지실이섬·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섬 중앙은 평지이다. 신평리에서 용수리 방향으로 걸을 때, 모슬포항에서 고산리 방향으로 걸을 때 계속 차귀도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 남섬이 유독 많이 연상되는 섬이라, 꼭 들어가..

[제주안식26] 차귀도 일몰과 돌고래

두 형제가 제주에 내려왔다. 종훈 형제는 청년부 시절부터 친구였고, 동조 형제는 내가 기윤실 간사할 때 대학생위원회에서 만난 사람이다. 오래전 알았으나 그 이후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최근 우리 교회에 합류했다. 든든하고 편안한 사람들이다. 지난해에 캄보디다에 함께 다녀왔고 올해도 두 번째 캄보디아 단기선교에 다녀왔다. 그 두 형제가 제주에 내려왔다.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오후 해질녘에 내 숙소로 왔다. 날씨가 너무 좋다. 왠지 일몰이 멋있을 것 같다. 짐을 내려놓지 마자 서둘러 싱게물해변으로 나간다.  두 사람 뒤로 멀리 한라산이 또렷하게 보인다. 바로 그 산에 우리 세 사람이 오를 예정이다. 해 질 녘 싱게물 공원에 처음 나와 봤는데 참 아름답다. 아직도 내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