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걷는 시간이 많아지니 당장 무릎에 무리가 가나 보다. 무릎 통증이 생겼다. 해서 오늘은 숙소에서 늘어지게 쉰다. 쉴 때는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모처럼 독서량이 많은 오전이다. 아무래도 좁은 숙소에 종일 있으려니 몸이 늘어진다. 몸이 늘어지면 영혼도 탁해지는 것 같다. 불안감이 솔솔 몰려온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있어도 괜찮은 건지 싶다. 잠시 밖에 나가 걷는다. 바다로 나간다. 돌담 사이를 걷는다. 이 마을 저 마을 골목골목을 한량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느리게 걸을 때는 뒷짐 자세가 최고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손이 뒤로 돌아간다. 느리게 걸으면 자세히 보인다. 새삼 길가에 핀 꽃들과 여기저기에서 지저귀는 새들과 위험한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는 벌레들에 눈과 귀가 쏠린다.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