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하나님 나라, 그 낮은 곳을 향하여!

신의피리 2015. 5. 29. 09:29

<QTzine> 기고글. 2009년 9월 <이 책만큼은 꼭>

 

하나님 나라, 그 낮은 곳을 향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준 여파가 크고도 깊다. 이 글을 쓰기까지 한 십 여 일을 울면서 보냈다. 울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내 몰골의 이중성을 돌아보고, 내 열정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지를 성찰하고, 어떤 꿈이 좋은 꿈인지를 살피지 않으면 안됐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는 마치 불꽃처럼 살다간 선지자인양, 신자임을 자처하는 나의 지지부진함을 흔들어 깨우곤 했었다. 결국 뼛속 깊이 스며들어온 그의 슬픈 죽음은 타성에 젖어가는 목회열정을 재점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니,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다시 소명을 기억해내고, 다시 제자도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다시 공동체의 기틀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내 결단을 견고하게, 지속적으로, 실천하게끔 한 책들을 더불어 추천한다.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헨리 나우웬, IVP)

우리 시대의 기독청년들은 헨리 나우웬의 도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학자로서 정점에 올랐다. 하버드와 예일에서 심리학과 영성을 가르치면서 많은 학생들의 지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상향지향적 충동을 직면하고는 기꺼이 최고에게 선사되는 풍요로운 대가를 포기하고 가장 낮은 지점으로 내려갔다. 자신의 지성을 전혀 부러워하지도 않고, 가르침을 배울 의사도 않는 장애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삶을 공유하는 비효율적인(?) 여생을 보낸 것이다. 낮은 곳을 지향한 그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가리키는 이정표의 다름 아니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길은 상향성의 충동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하향성으로의 역주행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하향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나우웬의 책을 읽으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픈 숭고한 소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나우웬의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김영사)

젊은이들에게 한완상 교수를 아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모른다 한다. 모르는 게 죄인가? 그렇진 않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좌표가 어딘지 확인하게 되니 다소 슬퍼질 따름이다. 복음은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앙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 위의 삶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배운 복음은 삶과 사회와 동떨어진 교리에 갇힌 복음이고, 우리의 신앙은 개인의 영혼에만 관련되며, 예수님은 인간의 체취와 숨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천상의 신일뿐이다. 이렇게 박제화된 교회가 이 사회에 끼친 영향이 무엇일까, 이 사회는 이런 교회를 향해 무어라 말하는가?

한완상 교수는 교리로 채색된 예수님보다는 땅 위를 걷고 숨 쉬었던 역사적 예수님으로부터 더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아 소셜 닥터(social doctor)가 되고자 하는 소명을 갖게 되었단다. 그의 이력에 관해선 그의 책을 들춰보라. 혹 전통교리에 대한 애정이 과한 사람들은 안 읽은 것이 좋겠다. 다만 당신이 예수님의 꿈과 정신이 이 대한민국의 역사 속으로 밀고 들어와 개인과 사회 깊숙이 스며들기를 소망하는 의식 있는 젊은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래리 크랩, 요단)

교회공동체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가면무도회가 따로 없다. 공동체를 열망하지만 구현되지 않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 앉아 있을 때 우리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참여하지도 못하는 참담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에게 있어서 자아의 거짓가면을 훌훌 벗고, 두려움 없이 서로 수용하고 수용되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진짜 공동체를 소망하는 것은 허망한 일일까? 래리 크랩은 현대 사회의 우상인 자아실현의 길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성령의 상담전문가이다. 그의 모든 책이 다 필독서이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지체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더 진솔하게 되고, 더 안전한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될 것이다. 당신과 당신 공동체가 모두 성장을 위한 여정에 나서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