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26:36-46 / 겟세마네 전투

신의피리 2024. 4. 17. 08:07
마태복음 26:36-46

3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38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39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40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41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42   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43 예수께서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44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서, 또다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로 기도하셨다.
45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시간은 자고 쉬어라. 보아라, 때가 이르렀다.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6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

 


늘 홀로 기도하시던 예수께서 그날 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에게 함께 기도하자 하신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예수님도 마음이 괴로우셨다. 말실수를 했거나 뭔가 잘못해서 괴로운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우셨을까?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이 괴로우셨을까?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법정이 괴로우셨을까? 채찍질당하실 것을 괴로워하셨을까? 숨통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당하며 십자가 위에서 반나절 매달려 죽어가야 하는 것이 괴로우셨을까? 예수님의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었다 한다. 괴로움이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신다. 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투를 벌이는 기도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다.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신다.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왜 그러셨을까? 그들의 기도가 필요하셨을까? 그들이 곁에 있으면 좀 위로가 될 것이라 여기셨을까? 아니면 당신의 겟세마네 격전을 목도하게 하려 했던 것일까? 완벽한 기도의 모본을 친히 보여주시기 위함인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예수님의 면모를 상상하면 왠지 불경한 마음이 든다. 그 모든 것조차 다 제자들을 위한 교훈이 목적이라 여기면 너무 연극적이다. 

 

예수님은 괴로우셨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셨다. 그러니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핏줄이 터져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다 하지 않던가. 예수께서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아셨을 것이다. 피조세계 속에 암약하던 모든 악의 총공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악은 유혹한다. 유혹이 통하지 않자 겁박한다. 성전과 율법의 수호자들이 악의 편에 선다. 로마 제국의 상징이 총독도 악의 도구가 된다. 어리석은 백성들도 그들 편에 가담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도 악의 공포에 뒤꽁무니를 빼고 도망갈 것이다. 하늘 아버지는 얼굴을 돌리실 것이고, 대화를 거부할 것이다. 과거의 악들, 현재의 악들, 그리고 장차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모든 인류의 그 욕망들이 합세하여 대못을 들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단 하나의 가능성, 불가능에 보이는 그 가능성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그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한 힘을 빼앗긴 채, 완전한 한 인간 안에서 최저의 상태로 최악의 상황 속을 헤쳐나가셔야 했다. 그 마음 누가 알아주랴. 그 괴로움 누가 덜어주랴. 다 아시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궁둥이는 밤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얼굴을 땅에 처박고 있다. 

 

내 마음 안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괴로울 때 그 동산에 오른다. 여지없이 예수께서 천년도 넘은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기도하신다. 나는 갈등한다. 육신을 따라 잠을 잘 것인가, 주님의 부탁을 따라 주님과 함께 주님 곁에 머물며 기도할 것인가. 사랑으로 무장하여 전투에 임해야 할 때 나는 내 마음 안에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야 한다. 거기서 나와 함께 오늘도 졸지도 아니하시며 고투하며 기도하시는 예수께서 계신다. 

 

주님, 육신이 약합니다. 육욕에 매번 지고 맙니다. 주님의 영으로 단련하소서. 사랑으로 무장시키소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