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is Present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25장 / 어떻게 살(죽을) 것인가

신의피리 2024. 4. 14. 09:00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다소 거칠고 매서운 뉘앙스가 풍기는 마태복음 25장 설교에서 나는 이 두 질문을 내내 던지게 된다. 인자가 오는 날이란, 언젠가 나는 죽는다는 말로 읽힌다. 그날이 언제일지 나는 모른다는 말이다. 인자가 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은 채, 오늘 제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나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가장 나쁜 삶으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죽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은 '메멘토 모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하여 하루하루를 죽음의 그림자에 눌려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도리어 오늘이 소중한 것이다. 매순간이 빛나는 오늘이 되도록 사는 것이다. 이 땅에 이 몸을 가지고, 이 성격을 가지고, 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는 세상에 보내졌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보내신 분의 뜻이 있지 않겠나. 그분의 뜻은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게 한다. 그분이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이시니 그러하지 않겠나. 

 

한 사람이 신경 쓰인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다. 그에게서 자꾸 내가 겹쳐 보인다. 실패가 두려워서, 실패한 삶, 실패한 존재라는 주인의 평가가 두려워, 그는 실패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 삶은 결코 성공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는 주어진 삶의 기회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건만 그는 주인이 두려웠다. 아니 주인을 오해했다. 주인의 평가가 두려웠고, 자신의 실패, 실패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워서 그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 

 

한 달란트를 받았다. 받은 것을 잘 활용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평가하는가. 실패가 두려워서 혹시 어정쩡하게 수동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그런 삶이 과연 영광스럽고 후회되지 않는, 생명으로 충만한 영원을 향한 부활에 참예하겠는가. 

 

"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4)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21)

 

"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0)

 

 

주님, 흩어진 주의 백성들과 모여 예배드리는 날 아침을 맞습니다. 한 주간의 삶을 계수합니다. 회개할 것은 가슴 저리더라도 고백하게 하소서. 그러나 저항할 수 없는 당신의 침노한 은혜를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더 잘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