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18:15-20 /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신의피리 2024. 3. 13. 07:00
마태복음 18:15-20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너의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 지으려는 것이다. 17 그러나 그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

 

내 형제자매 중 하나가 내게 죄를 짓거든,

 

첫째, 가서 단 둘이 만나 그에게 충고하라. 그가 내 말을 듣고 받아들이면 나는 그를 얻는 것이다. 

 

이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자고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성장하기를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 첫 스텝이 중요하다. 그러면 대개 해결된다. 그가 내게 대놓고 지은 죄라면 부끄러워할 것이고, 모르고 지은 죄라면 더욱 그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러나 그가 내 충고를 듣지 않는다면, 이번엔 한두사람을 데리고 다시 찾아가라.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파악하고 확정 지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가 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일대 다로 만나면 그 '일'은 위축되고 내몰리게 된다. 그가 큰 사람이라면 속히 인정하겠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위선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앞에서는 인정하는 척하나 돌아서서는 분노하기 쉽다. 아무튼 이쯤 되면 어지간히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를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우선은 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왜 그랬는지, 무슨 이유로 내게 그리했는지 정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동기를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동기를 정직하게 성찰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해결될지도 모른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 공식기구에 말하라. 교회가 그를 정식 소환하여 조사하게 하라.

 

이 큰 권위가 마지막 단계다. 이는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이실직고 하면 용서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단계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교회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다. 단호하게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내버려 두려는 편이다. 그러나 그 형제가 지은 죄의 크기가 크다면, 그리고 재발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교회는 그 죄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넷째, 최후의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가 듣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긴다. 

 

이 말씀이 과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일까? 궁금하다. 주님은 이방 사람도, 세리도 배척하지 않으셨다. 이 말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용서하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씀일까? 젊어서는 이 말씀을 귀담아 듣지 못했다. 한 지체를 울타리에서 내쫓는다는 것은 교회답지 못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삶에서 이런 경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 지경까지 오기 전에 당사자가 먼저 나가버릴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 현실에서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마을과 교회 공동체가 아주 가까울 때에는 이것이 무서운 처벌이 될 수 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다른 교회에 가서 똑같이 지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보니, 첫 시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상처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그를 찾아가 단둘이 마주 앉아 그 문제를 대면하는 일 말이다. 그러지 못해서 그냥 어색한 관계, 빙빙 도는 불편한 관계 안에 그대로 오랫동안 머물러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 상처받거든 그 상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게 하소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라도, 용기와 사랑으로 마주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