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렉시오 디비나

마태복음 17:22-27 /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신의피리 2024. 3. 11. 07:00

마태복음 17:22-27

 

22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곧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23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여러분의 선생은 성전세를 바치지 않습니까?”
25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바칩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들이느냐? 자기 자녀한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26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남들한테서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전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

 

***

 

유대인 남자들은 20세가 되면 해마다 성전세를 바쳤다. 원칙대로라면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직접 바치는 것이었으나, 먼 지방에 사는 이들은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어려워서 성전세 받는 이들에게 대신 납부하기도 했다. 성전세는 두로 화폐로 반 세겔을 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 동시에 예수님은 유대인 남성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하기 위해 베드로를 시켜 물고기 입에서 은전 한 닢을 건져 올리게 해서 성전세를 내게 했다.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을 설명하고 해명하고 납득시키는 일은 당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작은 일에 걸려 넘어지면 큰 일을 보지 못한다.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의 빌미를 제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해서’

 

캄보디아 올프렌즈에서 그곳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다. 막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예고도 없어 들어와 강단 위로 올라왔다. 미처 그 누구도 제지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이 있었어도 제지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는 그 지역 경찰서장이다. 사복을 입었고, 휴대폰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내게 자리로 내려가라고 하더니, 한국에서 온 이들을 한데 모아 사진을 찍었다. 채증일 것이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예배 중이니 예의를 갖춰달라고 요구할까도 생각했으나, 잠시 그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잠잠해지리라 생각했고, 그는 사진을 찍고 뭐라 한 마디 한 후 사라졌다. 우리는 상처를 받았다. 현지 예배인들은 더 상처를 받았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었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해서’

 

내가 하는 행동과 내 마음의 자유로 인하여 오해하거나 갈등할 빌미들이 있을 수 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 목숨과도 같은 일들이 아니라면, 저들이 걸려 넘어져서 더 큰 뜻을 그르칠 수도 있을 사안들이라면, 기꺼이 자의로 내 행동과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저들보다 더 큰 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주님, 내 자존심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타인과의 불화를 허용하고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여
높은 담을 쌓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지혜롭게 판단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며 무엇보다 큰 사랑으로 마주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