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

M,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

신의피리 2007. 7.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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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3학기,
<설교학> 과제로 제출했던 서평
 


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를 읽고


지겨운 설교 두려운 설교

정직하게 고백하겠다. 내 생활에서 가장 지겹고 괴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1857년 안토니 트롤롭이 말한 것처럼1), ‘설교를 듣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너무나 빤한 이야기를 주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은 보통 지겨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무례하고 모순되고 삼류도덕선생들의 잔소리 같은 이야기를 설교라는 수단을 통해 들어야한다는 것은 지겹다 못해 괴로운 일이다. 나만 그런가! 나는 설교시간을 무관심과 짜증으로 참아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다수는 진짜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말씀을 향한 목마름이 말씀의 전달자로 인해 잘 채워지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말씀의 전달자가 어떤 영성과 역량을 지녔는가에 따라 청중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설교를 통해서는 단순한 감동 수준이 아닌 영혼이 떨리는 것 같은 충격과 도전을 받을 때도 있지 않은가!

거부하고 싶었다.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도들을 지겹게 만드는 설교자 리스트에 추가될까 두려워 끝까지 사양하고 싶었다. 내 자신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좋은 설교자가 될 조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5년을 질질 끌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다른 일을 추구해보았다.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지만 두 가지 소망이 있어서 결국 소환명령에 순순히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다가 말씀이 나를 읽어 버릴 때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지라도 그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큼 값진 것이 없었다. 또 하나는 폴 사이먼의 노래처럼 험한 세상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다리가 되는 말씀의 사자가 되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욕망인지 소명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아무래도 불행한 인생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신학수업은 대체로 행복했지만 설교사역은 대개 부담이었다. 아무래도 나이브한 설교자의 대열에 합류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사실 간절히 바라던 바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단 위에 오를 때마다 나를 무겁게 했다. 아직 군사훈련소에 있는데, 총 들고 전쟁터로 나가라고 하니 이처럼 큰 두려움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믿는 바에 대한 모호한 인식, 감정기복이 심한 정체성, 나를 뜨겁게 달구는 정열의 기초, 십자가에 비춰진 부패한 내 본성, 어설프고 질퍽거리는 스피치 능력, 저속하고 천박한 지적 편린들, 믿음과 행위의 불일치…, ‘나의 현주소가 이와 같은데 어떻게 설교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시도때도 없이 나를 엄습해 올 때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가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연거푸 두 번을 읽었다.


설교라야만 한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는 지금껏 내가 설교에 왜 절망해왔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다. 설교문의 부실도 원인일 수 있고, 설교행위에도 문제가 있었다. 청중에게도 작지 않은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설교자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 설교가 죄인인 인간을 각성시키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전향하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설교자가 안다면, 설교자에게서 선포되는 설교가 그렇게 나이브해서는 안되며, 그렇게 인위적이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설교는 사람의 소명 중에 가장 고귀하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소명’이라고 했다. 설교는 설교자가 하는 행위이지만 반대로 설교자는 설교를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전 존재를 설교를 향해 집중해야 하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설교를 위해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사자 혹은 대변인’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대통령의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해야 한다. 그 말의 뜻과 강도와 정황과 온도를 감지해 내야 한다. 그 말 너머 말을 하는 이의 마음속을 간파해야 한다. 동시에 기계적으로 레코더를 트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대통령의 말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대변인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하나님은 대변인을 통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며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러니 이 거룩한 사명에로의 부르심 앞에 어찌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설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설교에 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무슨 백과사전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방식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설교해온 설교의 대가가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며 후학도들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설교자의 책꽂이에 성경 옆에 나란히 꽂혀 있을 자격이 있다. 항상 수시로 펼쳐 읽으며 설교자로의 부르심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무슨 종합검진을 받은 느낌이 든다. 설교자로서의 소명을 확인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며, 설교자의 영광과 목적이 무엇인지 명쾌해졌다. 또한 설교행위에 나타나는 열정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설교문 또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준비되어야 하는지도 잘 배우게 되었다. 설교가 주는 낭만과 함정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인에 불과한 청중의 특성도 잘 알게 되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며 무기를 알고 전략을 아니 이처럼 즐거운 일이 또 없을 듯싶다. 그러나 동시에 강단에 설 때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열망과 긴장 또한 커지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작은 소자들 앞에서 하는 설교라도 온 몸을 던져 진리의 깃발을 흔드는 열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설교자의 사명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매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성령에 붙들린바 되는 성령의 사역자가 되길 열망한다. 한 평생 살다가 죽어 묻히면 그조차 한 편의 설교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