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하나님나라큐티

바쁜 목사, 나쁜 목사

신의피리 2018. 6. 8. 16:59

바쁜 목사, 나쁜 목사

김종필 목사

 

읽고 있던 책이, 낮에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눈 지인이, 어제 본 영화가, 하다못해 아침 식탁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아이가 던진 질문이,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네올 때가 있다. 때로 성령님은 이렇게 말을 걸어오신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교실에서 정신줄 놓고 딴 짓하다 선생님에게 걸려 등짝을 한 대 맞은 것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진 피터슨이 쓴 『목회자의 영성』이라는 책 35쪽을 읽는 중이었다.

 

“목사 앞에 붙는 ‘바쁘다’라는 형용사는 마치 ‘간음하는’ 아내나 ‘횡령하는’ 은행가라는 말처럼 우리 귀에 들려야 한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스캔들이고 신성모독적인 모욕이다.”

 

나는 이 문장을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귀로도 들었다. 이는 바쁜 일과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고 있는 나를 향한 주님의 경고임에 분명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내와 영화 한 편을 보는데 또다시 비슷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영화 『데몰리션(Demolition)』(장 마크 발레 감독, 2016년)을 보던 중 말미에 주인공이 차 안에서 집어든 메모지에 쓰인 문구가 자막으로 등장하자, 그 문장은 음파로 전환되어 내 귀로 들어와 마음에 새겨졌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참 묘한 일이다. 영화를 본 지 이틀 후, 연속해서 네 명의 성도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비슷한 음성들이 계속 내 귀에 꽂힌다. “목사님, 바쁜 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해요.”, “목사님은 늘 바쁘신 것 같아 가까이하기 힘든 것 같아요.”, “목사님 바쁘시니 제가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 “목사님 바쁘신데 그런 일까지 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주님께서 연일 귓등으로도 안 듣는 내 귀를 후벼 파시듯, 거듭거듭 말씀하고 계심을 깨닫는다. 내가 얼마나 아둔하고 게으른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바쁜 일과에 매여 있는지, 주님께서 새벽에 결정타를 날려 깨닫게 하신다. 말씀 한 구절이 계속 내 뒤를 따라오며 내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편 62:1)

 

빠른 템포에 휩쓸려 바쁜 척하다 생명을 잃을까 하여 주님께서 내 뒷덜미를 잡고 속도 좀 줄이라고 경고하시는 목소리임에 분명하다. ‘네 주님, 알겠습니다. 바쁜 척 그만하고 주님 앞에 잠잠히 머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