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With Nouwen

내면을 정확하게 읽을 줄 아는 목회자

신의피리 2009. 11. 13. 11:46

"기도의 사람이란 다른 사람에게서 메시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며,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구체적으로 잡지 못하던 것의 실체를 파악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구체적 이유는,
그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혼란으로부터 빠져 나와 그들도 명료하게 인식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긍휼을 통해, 사람들이 배타적인 내부 집단을 벗어나 전인류의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비판적인 묵상을 통해, 이 세대의 강박적인 파괴성을 다가올 새 세상을 위한 창조적 사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상처입은 치유자>, 68-69)

나우웬 신부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사실 저는 매일 밤 당신의 일기를 훔쳐보고 있으니, 오랜만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개 당신의 글을 읽을 땐 편안히 읽고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기 일쑤랍니다. 한 자 한 자 보석같은 경구들을 꿰어 멋진 글들을 쓰시지만, 제 마음이 보화를 보화로 받질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신이 쓰신 책 <상처 입은 치유자>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뿌리 없는 세대를 위한 사역자들에게 필요한 3가지 자질에 대해서 말씀하셨더군요. 역시 헨리 다운 말씀이더군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하게 읽고 표현하라고 하셨지요. 그게 타인을 일으켜 세우는 거름이 될 거란 말씀은 당신의 책 전 지면에 두루두루 스며들어 있는 메시지이지요.

저도 그러길 원합니다. 수시로 제 내면을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일상에서 겪은 이런저런 일에 대한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표현하고 싶어 저는 내밀한 일기도 쓰고 또 여기 이렇게 글도 쓴답니다.

그런데요...저는 누구보다도 이 일은 잘 한다는 자부심이 아주 조금 있었는데, 목회를 하면 할수록 목회의 핵심인 이 일에 퇴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답니다. 묵상은 연약함을 보게 하고, 인정하게 하고, 고백하게 하는데, 제가 해야 하는 직무들의 양과 속도가 너무 많고 빨라, 숙성되지도 않은 이야기들로 남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불편합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체화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뻔한 말투와 뻔한 논리와 뻔한 기독교용어들로 채색해서 설교하고 상담하게 되지요. 어눌하고 서툴다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남에게 지적당하지 않게 하려고 하다보니, 그럴싸한 말로 잘도 포장하고, 그럴싸한 열정의 불꽃을 자생시킬 줄 아는 비법도 알게 됐지요. 그게 반복적으로 순환하게 되더라구요. 아~ 묵상 없이도 칭찬받으면서 목회 할수 있구나... 내가 내 속에서 아우성대는 소리에 조금만 무시하면 얼마든지 묵상 없이도 목회 할 수 있겠구나..

나우웬 신부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부유하는 제 마음을 잡아 잠시라도 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래도 당신 덕에 저는 제가 섬기는 젊은이 리더들에게 진실할려고 꽤 애썼고, 위장된 가면을 벗으려고 꽤 애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박적으로 그런 건 아니구요, 그게 훨씬 편안한 제 스타일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끔 제가 모질고 확고하게 말하지 못해서 저들이 더 힘겹게 보내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나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이 길이 제대로 가는 길임을 믿을게요. 우리 젊은 리더들이 상처를 위장한 채 거룩의 가면을 쓴 리더들이 아니라, '상처 입은 또다른 치유자'로 세워질 수 있도록 오래도록 기도하고 오래도록 인내하고 가장 바닥을 치는 순간에도 곁에서 기도할까 합니다. 지금은 이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오늘 제 편지가 다소 모호한 느낌이 듭니다. 더 늦기 전에 당신께 편지를 써야 한다는 부담이 글을 서두르게 한 건 아닌지 싶어요. 그래도 이 표현 그대로 당신께 부칩니다. 또 연락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