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2018/06 14

내 발에 등, 내 길의 빛

내 발에 등, 내 길의 빛100주년기념교회 김종필목사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화사했던 봄, 짙푸르렀던 여름, 고즈넉한 가을을 지나 쓸쓸한 겨울을 또다시 맞는다.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니 자연스럽게 걸어온 길을 반추하게 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일 년 전 내가 꿈꿔왔던 그 모습일까?’, ‘지금의 내 삶은 젊은 날에 내가 꿈꿔왔던 그 미래였을까?’ 그렇지 않다. 내 계획은 처음보다 많이 빗나갔다. 내 계획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몸무게는 줄지 않았고, 관계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믿음은 생각만큼 진보하지도 성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주님과의 소통이 끊어지지 않았고, 되돌아올 말씀의 자리가 있으니,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

느리게 걸어야 보인다

느리게 걸어야 보인다. 1 김종필 100주년기념교회 전임목사 집에서 교회까지의 거리가 1.5km입니다. 낮에 차를 써야 하는 일들이 많아 보통은 자가용으로 출근을 합니다.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어느 날 차가 고장 나서 부득이하게 걸어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걸으면 20분은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왠지 거리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매일 수년을 지나다닌 길인데도 마치 남의 동네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집집마다 담벼락 너머로 뻗어 나와 있는 감나무들이 정겹습니다. 낡아 보이는 어떤 빌라 앞마당에 예쁘게 가꾸어져 있는 작은 정원을 잠시 멈춰 서서 구경해 봅니다. 얼마 전에 부동산 간판을 분명 본 기억이 있는데 어느새 예쁜 카페로 변신한 곳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유산김종필 목사 내 부친께서는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불과 40여 일 투병 후 74세에 별세(別世)하셨다. 구십은 사실 줄 알았는데, 처음 맞이한 병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황망하게 떠나신 것이다. 떠나신 분도 남는 가족도 갑작스러운 이별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그 마지막 며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우리 가족은 그 죄스러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때론 침묵으로 때론 무덤덤한 일상이야기로 죽음의 기운을 견딜 뿐이었다. 목회자인 나는 부친의 죽음을 단 하루도 연장할 수 없는 무기력 때문에 더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씀도 남기지 않고 떠나신 부친의 빈자리에는 여러 감정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제일 먼저 치고 들어온 파도는 그리움이었다. 식사를 못하시..

바쁜 목사, 나쁜 목사

바쁜 목사, 나쁜 목사김종필 목사 읽고 있던 책이, 낮에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눈 지인이, 어제 본 영화가, 하다못해 아침 식탁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아이가 던진 질문이,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네올 때가 있다. 때로 성령님은 이렇게 말을 걸어오신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교실에서 정신줄 놓고 딴 짓하다 선생님에게 걸려 등짝을 한 대 맞은 것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진 피터슨이 쓴 『목회자의 영성』이라는 책 35쪽을 읽는 중이었다. “목사 앞에 붙는 ‘바쁘다’라는 형용사는 마치 ‘간음하는’ 아내나 ‘횡령하는’ 은행가라는 말처럼 우리 귀에 들려야 한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스캔들이고 신성모독적인 모욕이다.” 나는 이 문장을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귀로도 들었다. 이는 바쁜 일과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