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박흥식 지음

이 책은 쉽고 재밌다.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내일 주일설교 작성해야 하는데, 이 책 읽느라 벌써 토요일 오후가 되어 버렸다. ㅠㅠ) 게다가 어렵고 까다로운 신학논쟁은 나오지 않고, 시대적 상황에서 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으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객관적으로 쉽게 기술하고 있다. 루터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부끄럽지만 ‘루터’하면 떠오르는 게, 면죄부에 대한 ‘95개조 반박문’과 ‘독일어 성경번역’ 밖에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루터의 개혁운동을 개괄적으로 두루 훑어보게 되었다. 동시에 그의 빛만 본 게 아니라 그늘도 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의 백미는 책의 끝, <에필로그: 루터는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에 요약되어 있다. 루터파 교인들은 적잖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종교개혁의 전사로 호출’된 마르틴 루터를 영웅으로 묘사하던 관점이 아니다. 당대 가난한 농민들의 삶과 요구를 외면하고 말년까지 귀족들과 가까웠던 점, 자신의 성경해석과 달리했던 다른 개혁신학자들을 형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제한 점,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과 폭력적 언사를 가감없이 행사한 점, 저자는 이런 루터의 그늘까지 제대로 살펴 보자고 제안한다.

루터의 시대로부터 500년이 흘렀다. 그 시대 가톨릭의 추악한 유산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시대 개신교로 넘어왔다. 오직 성경에 충실코자 한 루터의 용기를 생각한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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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일 죽는다면>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80세가 넘은 스웨덴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서 소유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이야기다. 스웨덴 사람들은 그것을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데스클리닝은 당신이 세상을 뜬 후 자식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물건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배려입니다. ... 데스클리닝은 즐거운 놀이로써 이를 통해 물건의 의미를 찾고 추억에 젖는 것이 핵심입니다.”(182p)

얼마전 우리교회 교우님의 한 가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72년생, 나와 동갑이란다. 젊다. 아직 인생 정점을 찍지 않은 나이일텐데, 나랑 동갑이란 말에 무척 그 가족이 안쓰럽다.

어느날 홀연히 찾아올 죽음, 그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배려와 사랑으로 남으려면, 그날을 대비하는 부끄럽지 않은 오늘이어야 한다. 마르가레타 망누손, 부르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스웨덴 할머니의 따뜻한 정리정돈 이야기가 도리어 삶에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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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 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 ...”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p.82)

박완서의 쓰라린 일기를 읽다 이 문장에서 멈칫거린다. 나는 언제나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내 귀와 마음을 탓했지, 말없이도 우리를 굴복시키는 하나님을 비난하진 않았다. 그분은 늘 말씀하셨건만 듣지 못하는 건 나였다. 듣고 싶어 갈망했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그분을 욕하진 않았다.

신의 대답을 듣고 싶은 열망도 없고, 못 듣는다고 아우성치지도 않고, 그저 존재하는 걸 당연히 여기나 정작 존재하시는 분을 존중하지도 않는 삶. 아들 잃은 어미의 절규가 회칠한 무덤 같은 종교인보다 훨씬 더 하나님께 가깝다.

내 기도의 언어를 되돌아본다. 뻔한 미사여구를 반복하고 있는지, 늘 새로운 가슴의 언어를 구사하는지.​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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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91년 스무 살, 파릇파릇 한 대학 신입생 때, 교회 교구담당 전도사님이 슬쩍 책 한권을 내밀었다. 단숨에 책을 읽었지만 거부감이 컸다. 나를 형성한 내 영성과 ‘달랐기’ 때문이다.

27년 만에 다시 다른 출판사에서 복간된 문익환 목사님의 책을 읽었다. 마침 오늘이 문 목사님 탄생 100주년이란다.

‘히브리’는 ‘하비루’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대 근동의 노예나 용병을 지칭했다고 한다. 출애굽은 ‘하비루’들의 해방전쟁이다. 가나안 정복은 가나안의 ‘농민’들과 ‘하비루’들이 합세하여 전쟁의 신 ‘야훼’의 이름으로 싸운 민중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전쟁이다. 아브라함-모세-갈렙-다윗-엘리야-아모스-예레미야 등으로 이어지는 하비루 전통. 궁중사가들에 의해 희석된 구약을 민중사의 관점으로 다시 푼 문 목사님의 발바닥 민초들의 이야기. 그들을 편드시고 그들을 통해 나라를 펼쳐가시는 전쟁의 신 ‘야훼’.

문 목사님이 살았던 7-80년대 독재 시대라는 렌즈를 통해 구약을 본 것인가, 아니면 구약에서 오늘의 시대를 본 것일까.

강대국 사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비애를 끌어안은 예레미야처럼 엄혹한 시절, 투옥과 감시, 협박과 배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억압받는 민중들 편에서 함께 울고, 갈라진 한반도 땅의 통일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뛰며, 성경을 민중들에게 읽히도록 번역에 힘쓰셨던 문 목사님.

참으로 문익환 목사님은 큰 목사님이다. 아아 목사인 게 부끄럽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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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영성이다


요즘 제임스 스미스가 화제인가 보다. 해서 가장 쉬워 보이는 책부터 골라봤다. 논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다보니 이런 문장이 나온다.

“따라서 나라가 임하길 기도하셨던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뤄진 예배 공동체를 특징지어야 할 문화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은 계속해서 노력해 왔다.” (p.128)

뭐래는 거야? (똑똑한 나의 벗들, 성호나 준재가 원문 비교 하여 해설해주길 바란다.) 암튼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 이렇게 쉽게 해독이 안 되는 문장들을 읽어야 할 땐 참 골치 아프다.

제임스 스미스의 주장은 그리 신선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나’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이 나’라는 주장은 개혁주의 신학 밖에서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바다. (이렇게 신학은 늘 시대보다 느리다. 하물며 교회 교육과 예배는 더 느리고, 목사들의 설교는 하품만 나온다.) 이 전제로부터 저자는 갈망(욕망)의 세속적 패턴을 ‘예전’으로 읽어낸다. 하긴 소비사회는 벌써 거대한 종교가 되지 않았나.

암튼 저자는 매주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가정교육에서 ‘예전’ 전통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에서는 ‘예전’을 ‘형식’으로 보고, 나아가 인간의 노력과 자기 의의 발로로 해석하여 마치 구원을 우리 노력으로 얻으려는 카톨릭의 아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리 생각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개혁주의 예배와 교육은 무미건조한 낡은 전통으로 뒤처지고 말았다.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감성적 찬양과, 현실의 속살을 전혀 터치하지 못하는 교과서 읽기식의 동어반복 설교의 이율배반 속에서 겉돌고 헛돈다. 부모의 품을 떠나는 순간 그들은 순식간에 교회를 떠나고 만다.

음, 이야기가 조금 샌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죽은 형식적(으로 보이는) 예전을 어떻게 오늘 여기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만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귀로 듣는 말씀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참여하는 예전을 예배와 가정교육 안에서, 목회자들은 어떻게 기획하고 실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 내겐 관건이 아닐 수 없다.

1년 단위로 4계절이 무한반복 된다. 계절을 따라 교회력도 반복된다. 주일 예배도 매주 반복되고, 가정도 매일 매일 반복된다. 보호해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나날이 매순간 머물며, 성령의 새로운 길을 따라 욕망을 물리치고 살아가도록 돕는 건, 때론 ‘언어’가 아니라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전적 행동’일 때가 있다. 일상과 가정의 예전화, 그리고 품격있고 생명 있는 예전적 예배 안에 성령님의 생명이 깃들기를 갈망한다.

갈망하던 차에 <습관이 영성이다>를 만났다. 모방 - 반복 - 습관 - 영적인 근육 - 영성, 이 패턴이 단순한 공식이 아니라, 매주 예배에서 만나는 성령님의 임재이기를 소망한다. 그러고보니 기도문 한 문장을 정성껏 읽는 것도, 설교자의 손동작 하나도, 어쩌면 예전이 될 수도 있겠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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