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교구 소식지 6호. 2015/11/01


눈물로 드리는 새벽

 

딱히 외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쓸쓸하다. 가을 탓이다.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이 시간을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나뿐이랴! 이 계절의 고개를 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법이다. 곧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만 힘든 게 아니다. 인생의 불완전성 때문에 흔들리는 20대만 힘든 게 아니다. 중학교 졸업을 준비하는 우리 딸내미도 인생살이를 고달파한다. 마흔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도 쓸쓸한 정서가 겹겹이 쌓인다. 이 허전함을 어찌하랴!

 

적막한 새벽, 교회당 구석에 앉아 십자가를 응시한다. 위로부터 오는 소리는 없다.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잡소리들이 생각을 흩트려 놓는다. ‘한 말씀만 하소서. 갈증난 마음에 나직이 읊조려본다. “절 불쌍히 여겨주소서. 마뜩한 언어를 고를 수가 없어서 매번 주문 외듯이 반복한다. 십자가를 올려다보니 얼핏 근심에 쌓인 한 남자의 그늘진 얼굴이 보인다. ‘무엇 때문에 그리 무거운 얼굴이신가요?’ ‘네 얼굴 아니냐? 내 얼굴이기도 하니라.’ 공상 속에서 만든 내 언어인지, 내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인지, 주님의 음성이기를 바라며 지어낸 내 환청인지, 분간 할 수 없는 대화가 진행된다.

 

눈물이 마른 게 언제부터인가? 신학교 시절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딱히 뭐가 슬퍼서도 아니고, 은혜에 벅찬 감동 때문만도 아니었다. 오랜 방황 끝에 드디어 제자리에 온 듯한 안도감이랄까? 더 이상 딴길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듯 주님, 주님부르며 필사적으로 눈물로 매달리곤 했다. 그러다보면 나만 가련한 존재가 아니라, 내 가족도, 내가 섬기는 이들도, 내 교회도, 내 조국도 모두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가련한 존재들임에 가슴이 아팠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도리어 눈물샘은 막혔다. “네가 맡고 있는 청년들 위해 언제 눈물 흘려 보았느냐?” 근심에 찬 십자가에서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 게 보인다. 나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한결 같건만 그새 변한 건 나다. “결국 너도 변하는 거냐하시며 실망한 듯한 그분의 표정이 마음을 찌른다. 기근이다. 기갈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기도하는 이들의 언어 속에 하나님과의 독대라는 표현이 도드라진다. 쓸쓸할수록 더욱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홀로 길을 걸으며 하나님과 독대했던 바울처럼, 나도 그대들도 그분과 독대할 필요가 있다. 나를 위해, 그대들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하다. 아니 그건 감성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그분의 눈물이다. 그 눈물이 간절히 그립다. 이 가을에 되찾아야 할 내 소명이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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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교구 소식지 5호. 2015/10/25


지금 여기, 주어진 작은 일에서 행복하기

 

교구소식지 칼럼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딱 마음에 드는 주제가 안 생긴다. 흰 백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떠오르는 단어들을 썼다 지웠다 하기가 벌써 한 시간째다. 조급함의 바람이 불고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괜한 일 했나보다 하는 후회와 글쓰기 실력의 열패감 때문에 잠시 낙담한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시선을 돌린다. 이디오피아 예가체프 커피 한 잔을 찬찬히 내리니 고소한 향기가 번져가는 게 보인다. 글렌 굴드가 1955년도에 연주한 바흐(Bach)Goldberg Variations을 들으니 번민이 일거에 사라진다. 그리고 하얀 백지 위에 내 마음을 살며시 포개 얹어본다. 주님과 응접실에서 마주 앉은 느낌이다. “주님, 안녕하세요? 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청년들과 공명할 수 있는 좋은 글 하나 쓰고 싶은데, 제 영혼은 텅 비고, 소통은 단절된 느낌이에요. 주님, 저나 그들이나 다함께 하나님나라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 맞지요? 주님의 마음이 제 마음이 되고, 제 생각이 주님의 비전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가지세요. 저를 사용해 주세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어진 작은 일을 대하는 내 마음 안에 주님이 주시는 바램이 깃들어 있는가, 그것을 수행하는 내 마음에 자족이 차오르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묻고 답하는 사이 어느새 황량했던 내 마음에 훈훈한 영적인 기운이 스며온다. 지금 여기, 주어진 작은 일을 품고, 주님 안에서 행복하기 성공!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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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84부예배 기도문

 

부름의 말씀 후 기도 : 시편 625-7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그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아멘.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고개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입을 열어 나직이 주님하고 불러봅니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르고 있는 이 예배의 자리가 세상 가장 따뜻한 피난처입니다. 주님의 눈물자국이 묻어 있는 십자가 그늘 밑이 세상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그러나 지난 한 주간 나의 중심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흔들리는 나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버텨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흔들리다 못해 넘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쾌락의 유혹이 너무 달콤해서, 인정의 열망이 너무 강렬해서, 너무 폼 나게 누리고 싶고, 너무 뒤처지고 싶지 않아 타협하다보니, 줏대 없이 흔들려 자괴감에 빠질 때도 많았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늘나라에서 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영혼의 귀를 기울일 때 주님 음성 듣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우리 영혼 안에 좌정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직 주님만 주실 수 있는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며,

 

새가족 환영 기도 지난 주 말씀 상기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마르지 않은 생수의 말씀을 찾아, 사람이 아니라 오롯이 주님만 드러나는 예배를 찾아,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진실한 영적 만남을 찾아, 순례의 여정 끝에, 이곳 양화진을 찾은 새가족들이 있습니다. 두드리고 구하고 찾아 만나는 은총을 주옵소서. 무엇보다 앗소까지 홀로 걸으며 자발적 자기격리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했던 바울처럼, 여기 서 있는 새가족 한 분 한 분도 그 어떤 시련과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양화진 뜰을 밟을 때마다 더 깊이 하나님과 독대하는 은총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각각의 주어진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고, 기꺼이 쓴 잔을 수용하며, 용감하게 소명의 길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새가족들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하나님과 독대하여 자기격리의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종류의 두려움과 욕망도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하지 않고서는 세상은커녕 내 가족도 내 마음의 단 한 뼘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하지 않고서는 백년을 살아 많은 걸 이룬다한들 그 모든 게 다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주님,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 두지 않고, 이미 우리 안에 임해 계시고, 벌써부터 말씀으로 우리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께만 뿌리를 내려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 속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물이 오직 가난한 이들과 복음을 위해 씌어지게 하옵시고, 이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기꺼이 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헌기도 드립니다. 아멘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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