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초, 본회퍼가 옥중에서 쓴 시.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더러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온화하고 명랑하며 확고한지

마치 자기 성곽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감시원과 말하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친절하고 분명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전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불우한 날들을 참고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만을 아는 투사와 같다는데


남의 말의 내가 참 나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리워하며 약한 나,

목에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빛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친절한 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 하고

석방의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다.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게 된 나,

지쳐 이 모든 것에 안녕이라고 말할 준비가 된 나,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아니면 이 둘이 동시에 나인가?


남 앞에선 위선자, 자신 앞에선 비열하게 슬픔에 찬 약한 나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 앞에서 혼란하여

퇴각하는 패잔병과 같은 것이 내안에 아직도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 적막한 질문이 나를 희롱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오 하나님, 당신은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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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말로 나를 표현하고 싶으나,
어떤 단어도 선택할 수가 없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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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8.06.11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77876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를 기본적 자기 정의로 전제하고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존재’적인 측면의 의문을 해결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전제로서 여기고 있는, 그 믿음을 먼저 해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누구이기는 한 걸까?
    정말 ‘나’는 무엇이기나 한 걸까?
    지금까지 당연시 여기고 있던 이것이 정말 ‘나’일까?

    ‘지금의 나’에 대한 믿음을 먼저 해체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해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나는 누구인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측면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출처 : 불멸의 자각

    한번 읽어보세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

    • Favicon of https://nouwenjp.tistory.com BlogIcon 신의피리 2018.06.12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통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암만 들여다봐도 묻는 나와 대상으로서의 ‘나’가 무한 반복으로 이원화 되고, 결국 내가 누구인지 대답없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되는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신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