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초, 본회퍼가 옥중에서 쓴 시.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가끔 나더러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온화하고 명랑하며 확고한지
마치 자기 성곽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감시원과 말하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친절하고 분명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전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불우한 날들을 참고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만을 아는 투사와 같다는데
남의 말의 내가 참 나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리워하며 약한 나,
목에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빛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친절한 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 하고
석방의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다.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게 된 나,
지쳐 이 모든 것에 안녕이라고 말할 준비가 된 나,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아니면 이 둘이 동시에 나인가?
남 앞에선 위선자, 자신 앞에선 비열하게 슬픔에 찬 약한 나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 앞에서 혼란하여
퇴각하는 패잔병과 같은 것이 내안에 아직도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 적막한 질문이 나를 희롱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오 하나님, 당신은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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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말로 나를 표현하고 싶으나,
어떤 단어도 선택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