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With Nouwen

역사적 단절의식을 가진 젊은이들

신의피리 2009. 10. 14. 17:02

나우웬 신부님께

신부님, 그토록 소망하던 '주님 곁'에서의 삶은 어떠신지요? 이 땅 위에서 당신이 있는 그 곳을 앙망하는 믿음은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귀한 것, 맞는거죠? ^^

불현듯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손상된 내면을 부둥켜 안고 지리멸렬하게 살던 저를 건강하게 해주셨지요. 제 안을 성찰하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제 안에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이젠 조금씩 분별하게 되었지요. 두려움이 밀려 올 때,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이젠 씩씩하게 '영적 발돋움'을 잘 한답니다. 당신을 알게 되어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신부님의 이름을 부르고, 신부님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저는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얼굴은 도무지 감이 없어요. 그냥 잘 생긴 서양 배우만 생각날 뿐이지요. 그런데 저는 당신을 통과해서 예수님의 자리에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또 종종 당신의 통역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을 때가 있어요. 솔직히 제 믿음의 분량이 너무 적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10년 전에 처음으로 당신의 책을 봤었죠. <상처입은 치유자>는 신부님이 쓴 책 중에 제가 첫 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정확히 1999년 11월 15일에 다 읽었더군요. 그런데 애석하게도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어요. 신부님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듣긴 들었는데,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말 외엔 기억이 없더군요. 그래서 얼마 전에 그 책을 다시 꺼내 들었어요. 조금씩 읽고 있는데, 아주 쉬운 내용은 아니더군요. 다소 이론서적 느낌도 들구요. 역시 학자시구나 싶었어요. ^^

읽다가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좀 나누고 싶어 오늘 편지를 씁니다. 신부님께서는 첫 도입부에서 현 세상을 '단절된 세상'이라고 부르셨어요.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을 '핵 인간'이라 부르셨지요. 과학기술에 대한 낭만적 믿음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현대인들을 그렇게 진단하셨는데, 일단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이 핵 인간의 특징을 세 가지로 보셨지요. '역사적 단절', '단편화된 이데올로기', '새로운 불멸에 대한 추구'... 저는 청년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딱히 제 말로 옮기기는 쉽진 않습니다만, 신부님께서 지적하신 핵 인간의 세 가지 특성 모두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잘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이러한 시대를 치유하는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중입니다.

"핵 인간은 자신을 비역사의 일부로 여겨, '지금 여기'라는 바로 그 순간만을 중요시합니다."(20)

젊은이들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정말 생각보다 크더군요. 자신의 부모 세대와 경험적, 지식적 연계에 대해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저는 좀 갑갑할 때가 있더라구요. 그런 비연속적 단절상태는 마땅히 성경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마비 상태'라고 하셨죠? 이들을 해방시키는 방법은 신비주의도, 혁명주의도 아닌 제 3의 길, 예수님의 길이라고 하셨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그 길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다음 읽을 부분이 2부 뿌리 없는 세대를 위한 사역, 2장 '내일의 지도자'더군요. 아마 제 예상으로는 사역자의 삶과 사역과 내면과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길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시지 않을까 싶군요. 맞지요? ^^

이어지는 편지를 더 읽고, 다시 편지 드리겠습니다. 사역자는 누구인가? 사역자가 상대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처한 형편은 어떻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어떤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요한 문제였는데 하나씩 다시 살피고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10.14.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