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교구 소식지 2호. 2015/09/20


권찰(勸察)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청년부 소그룹 이름이 구역인 것도 조금 촌스러웠는데, 구역장을 도와 구역을 섬기는 청년 리더를 가리켜 권찰이라 부르니 말이다. 사전을 찾아봤다.

: 권할 권 / : 살필 찰

권찰 : [기독] 장로교에서, 신자의 가정 형편을 살피고 찾아가서 만나 보는 직무.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

 

곰곰이 뜻을 음미하다 보니 한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께서 권찰이라는 직분을 섬겼던 내 어린 시절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구역 식구들 집을 자주 들락거리셨다. 혼자 계시는 어르신에게 쌀을 갖다 드리기도 하고, 누구 누가 아프다 하면 늦은 밤 홀로 부엌에서 중얼중얼 기도하곤 하셨다. 구역장 직분을 맡고나서는 젊은 새댁을 데리고 다니며 권찰이 해야 할 일을 몸소 보여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옛날식 직분이라고 생각했던 그 권찰을 우리 20대청년들이 맡고 있다. 권찰을 맡은 청년들도 호칭 때문에 나처럼 피식 웃었다고 한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좀 어울리는 호칭 없을까 궁리도 해봤지만, 성도들의 마음 안팎의 형편을 살피고 권하는 권찰만큼 더 좋은 이름이 없는 것 같아 그냥 그대로 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권찰 호칭에 애착이 간다.

 

우리 21교구에는 12개 구역, 16명의 권찰이 있다. 어쩌다 내 눈에 띄거나 구역에서 추천을 받아 권찰이라는 직분을 맡아 섬기게 되었다. 나는 이들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격주로 만난다. 기도제목을 나눌 때도 있고, 찬양을 부른 적도 있다. 책을 읽고 나누기도 하며, 때론 삼삼오오 따로 만나 더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권찰들에게는 우리 집 거실에 앉을 수 있는 특권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실은 내가 하는 사역 중에 제일 애정을 가지고 마음 쏟는 분야가 권찰모임이다. 권찰들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권찰들은 더 많은 시간을 공동체에 쏟아야 하고, 교구 전체 행사를 비롯해 교회 행사에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없으면 재미없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그 어느 자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권찰들이 이미 다 알고는 있겠지만,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게 하나 있다. 권찰이 영적으로 깨어 그 직무에 충실하면 그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나라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 안에 머문 지체들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영적 공동체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힘을 내시라. 그대들로 인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나라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고, 척박한 현실을 함께 걷는 동무들이 거기서 쉼을 얻을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글을 갈무리하며 우리 권찰들을 향해 축복의 노래 하나 불러본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 당신을 통해 주 사랑 알기 원하네

 


Posted by 신의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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