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기고/양화진

있는 모습 그대로

신의피리 2015. 9. 13. 14:58

21교구 소식지 1호. 2015/09/13


있는 모습 그대로

 

내 나이 마흔넷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현재 기대수명이 78.5(201412월발표)라고 하니 반환점을 돈 셈이다. 요샌 죽는 게 그다지 두렵지가 않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짧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 마흔 즈음부터 세월의 속도가 제트엔진을 단 듯하다. 1년이 짧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의 속도와 성숙의 속도는 반례비하나 보다. 성장의 대한 마음의 몸부림보다 안주에 대한 몸의 욕구가 더 커졌다. 20대 때 쓴 일기, 30대 때 쓴 설교문을 간혹 다시 읽어보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굳이 내 글을 봐서만이 아니다. 20대 청년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냥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참 많다. 30대 교역자들과 논의하다보면 일하는 것부터 사람 대하는 것과 설교까지 다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그러다보니 상담도 조언도 설교도 자신 없어질 때가 있다. 다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잘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해 줄 말이 뭐가 있나 싶어서이다.

 

지난 8월 피정[避靜]기간에 6학년 된 둘째 아들과 함께 지리산을 다녀왔다. 늦은밤 용산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이른 새벽에 지리산에 도착해서 성삼재에서부터 천왕봉까지 걷는 23일의 긴 산행이었다. 아들이 잘 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했지만 그건 기우[杞憂]였다. 아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걸었고, 아비가 아들 염려하는 것보다 아들이 아비 염려를 더 속깊이 했다. 다녀온 후 아들의 기행문을 읽어보니 나보다 깨달은 것도 훨씬 더 많고 깊더라.

 

몸의 나이가 응당 통과하는 시기를 지나는 것일까. 아니면 내 영혼이 마른 황야를 지나는 것일까. 어딘가 잇대어 젊음의 물줄기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졌다. 이 땅의 지식이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담아내는 언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뭔가를 세우는 데 정력을 쏟아내기보다는 잘 건설된 공동체에 기대고 싶어졌다. 뭘 줘야 한다는 압력으로부터 해방되어 투명하고 진솔하게 사람살이에 공감하고 싶어졌다. 어쩌다가 오래된 낡은 LP판 같은 주보를 만들게 됐다. 그냥 서로 잇대어 보려고 하다보면 어느덧 성령님 안에 우리가 있음을 문득 깨달을 수 있으려나!

 

21교구 젊은이들이 만들어내는 첫 주보인데, 청년들에게 줄 청량감 뿜어내는 아이디어가 없어 고심하다 그냥 지금의 있는 모습 그대로의 민낯을 글로 찍어 보았다. 이게 나다. 그런데 이런 나도 참 괜찮은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