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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 어만, 성경 왜곡의 역사

신의피리 2007. 7. 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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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어만 | 민경식 | 청림출판 | 2006년 05월 15일


기독교는 '책'의 종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책'의 종교, '한 책'에 의한 종교이며, 전적으로 '한 책'인 '성경'에 근거한 종교다. 성경 없이 기독교는 논할 수 없고, 성경 없이 인간과 하나님을 논할 수가 없다. 성경이 우리 삶과 세계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성경의 원본이 없다는 사실과 전체적인 틀에서는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른, 그런 필사본들이 많다는 사실이 적잖이 혼동을 일으킨다.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는데, 필사자들의 수많은 필사본들과 다양한 역본들의 차이점들이 성경의 존엄성을 공격하고 있다.

이 사실이 성경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더불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신앙의 칼라를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한다.

저자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필사자들은 실수이든, 의도적이든 항상 '해석'의 과정을 따라 조금씩 변개시켜왔다. 자신들의 믿는 바에 따라서 말이다. 성경 안에서 마가복음을 누가와 마태가 조금씩 변개시켰듯이, 또한 고중세 필사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에 따라 성경을 조금씩 변개시켰듯이, 오늘의 독자들도 마음 속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저자가 던진 질문들은 아주 좋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수많은 고문서들 중에 유독 성경만이 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필사본이 많다. 신약만 5천가지가 넘는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걸까?
둘째, 많은 글들이 쓰여졌는데, 현재 신약 27권 정경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왜 애써 약화시키는가? 이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는 데 있어서 그 공통점을 단지 특정 '정통주의'자들의 '신학적인 이유'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본질상 '정경'이기 때문에, 적확하게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기 때문에, 내적, 외적 이유들로 정경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셋째, 필사자들이 변개한 이유들과 오늘 우리 독자들이 변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 아닌가? 오늘 우리가 변개한다고 해서 새로운 번역본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독자비평으로 흐를 가능성은 없는가? 객관적인 '사실'과 '사건'을 100% 재구성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성경의 원래의 1차적 의미를 전혀 공유할 수는 없는 것일까? 너무 주관화로 흐는 건 아닐까?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론에서 간단히 정리해두었기에,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용두사미인 것 같아 그의 결론이 아쉽다.

나는 성경이 그저 하나의 사람의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책인 동시에 성령의 책이라, 계시라 믿는다. 문자주의는 거부하나, 신적 저작을 약화시키는 것 역시 거부한다. 그저 하나의 책이라 하기엔 '성경'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