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세미한 소리를 듣다

나 파마했다

신의피리 2007. 1. 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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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됐는데, 전혀 새해 기분이 안 났다. 새해 첫날부터 복통으로 고생한 탓도 있고(그 복통의 원인은 맹장염이었다), 아직 남은 학교 과제물도 영향을 준 것 같다. 특새가 계속 새해맞이를 재촉했지만, 내 마음의 중심은 여전히 '옛과제'에 머물러 있었다. 나이도 속일 수 없었겠지...

앞으로의 일에 기대감도 없이, 지난 일에 대한 기억도 없이, 자질구레한 현재 일에 코를 쳐박고 어정쩡한 태도로 우왕좌왕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삶의 주도성이 없었다. 심장이 약동하지도 않았다. 아내의 정서가 통과하고 있는 터널은 아직도 길어 보였다.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를 돕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과 노는 것도 아니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뭣하고 있는 건가?

미용사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두어달 전부터 계속 꼬셔댔다. 분위기가 있어 보일 거라고 말이다. 내가 전도사인 줄 알면서도 계속 그랬다. 사실 나도 틀에 박힌 내 외모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거울을 보면 늘 맘에 안드는 녀석이 갈수록 나이만 먹고 있는 게 별로 탐탁치 않았다.

파마를 하고 나니 보는 사람들마다 이쁘다고, 멋있다고 한다. 우쭐해진다. 괜히 자꾸 손이 머리로 올라가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머리 한번 손질하게 된다. 어쨌든 새해에 일 하나 질러서 이래저래 마음이 들뜨고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즐거움 하나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예쁘게, 멋있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 그것 자체를 미워할 생각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이 욕구도 사그라들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의식의 대부분이 위로 향하지 못하고 나에게만 집착하도록 만들고 있는 건 분명하다.

헨리 나우웬은 트라피스 수도원에서 남들과 평범해지는 길이 나로부터의 관심을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고백한다. 공감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몸은 그 반대를 욕구하고 있다. 역시 즐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로 멋쩍게 거울을 들여다 볼 뿐이다.

떨쳐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