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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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안식18] 차귀도를 가봐야 한다

오늘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아주나쁨이다. 이틀 연속 숙소에 머물 수 없다. 다행히 오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오늘은 차귀도(遮歸島)에 들어간다. 차귀도는...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면적 0.16㎢로 제주특별자치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고산리에서 해안 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자구내 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는 무인도이다. 죽도·지실이섬·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섬 중앙은 평지이다. 신평리에서 용수리 방향으로 걸을 때, 모슬포항에서 고산리 방향으로 걸을 때 계속 차귀도가 눈에 들어왔다. 뉴질랜드 남섬이 유독 많이 연상되는 섬이라, 꼭 들어가..

마태복음 26:47-56 / 배반의 입맞춤

마태복음 26:47-56 47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왔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하였다. 48 그런데 예수를 넘겨줄 자가 그들에게 암호를 정하여 주기를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으시오" 하고 말해 놓았다. 49 유다가 곧바로 예수께 다가가서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하고 말하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50 예수께서 그에게 "친구여, 무엇 하러 여기에 왔느냐?" 하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손을 대어 붙잡았다. 51 그 때에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뻗쳐 자기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랐다. 52 그때에 예수께서 그에..

렉시오 디비나 2024.04.18

[제주안식17] 삶은 감자다

미세먼지 매우나쁨 초미세먼지 매우나쁨 아침부터 하루종일 미세먼지가 매우나쁜 상태다. 멀리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숙소에 머문다. 읽고 쓰고 눕고 먹는다. 몸이 근질거려서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처음으로 분리수거를 한다. 분리수거장은 금등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데, 걸어서 한 600여 미터 거리다. 할머니 한분이 분리수거를 도와준다. 아마도 활동비 조금 받으면서 일하시는 듯싶다. 이왕 나온 김에 또다시 동네 산책을 잠시 한다. 안 가본 골목길만 찾아서 걷는다. 한 집 돌담 앞에 멈춰서 생각한다. 저런 집에서 남은 인생을 살면 어떨까? 조금 공사를 하고, 마당에 잔디를 깔고, 느리게 아주 느리게 사는 것이다. 지금처럼 읽고 쓰고 걷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사는 것이다. 그럼 누가 밥은 먹..

승효상, 默想, 여행의 기술

5월에 두 주간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길에 오른다. 아내는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결기를 보여줬고, 결국 나도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베네딕토'에게도, '수도원'에게도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3개월 안식월을 제대로 보내려니 마땅한 계획이 잘 세워지지 않는다. 4월엔 홀로 제주살이를 하기로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독과 침묵을 친구 삼아보려는 마음인데, 어쩌면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와 접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싶었다. 가기로 결정하니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나는 베네딕토에 대해서도 모르고, 수도원에 대해서도 모른다. 신학교 시절 교회사 공부를 할 때 중세 1,500년은 한 10여분 만에 건너뛰었고, 내겐 관심 밖이었다. 초대교회에서 곧바로 종교개혁시대로 건너가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곧바로 리서치에 ..

마태복음 26:36-46 / 겟세마네 전투

마태복음 26:36-46 3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38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39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40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

렉시오 디비나 2024.04.17

[제주안식16] 어떤 바람

다들 용머리 해안에 꼭 가보라 했다. 마침 모슬포 항에서 식사를 한 김에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으로 간다. 날씨가 맑다. 바람이 살살 분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걸어가면서 기도한다. "주님, 오늘 같은 날, 제게 선물 한 번 주시는 건 어떠신가요? 용머리 해안길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큰 기대를 가고 갔지만 오늘은 개방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린다. '그렇지. 내가 왜 이런 걸로 기도했을까?' 병자들을 위한 기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 등은 잘하건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기도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기를 원하고, 그분의 나라와 뜻을 구하며 사는 그 모든 분..

제럴드 싯처, '아케디아'에 관하여

"그러므로 기도와 노동의 일과에 안주할 때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유혹이 '아케디아'(acedia)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아케디아는 쉽게 번역하기 힘든 헬라어 단어로 1,600년 전에 에바그리우스가 수도자들에게 지적했던 것이다. "나태"는 게으름을 뜻하므로 옳지 않은데, 이는 아케디아의 의미라기보다는 결과다. 아케디아는 권태, 불안, 부주의로 정의하는 것이 좋다. 일과로 인해 우리는 성급해질 수 있다. 그래서 신앙 성숙과 삶의 풍성한 수확에 이르는 더 쉽고 빠른 길이 있기를 바란다. 또 지름길을 택하기 원한다. 그래서 도중에 즐거운 일을 찾고, 빠르게 발전하는 과정이 눈앞에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단조로움과 지루함에 싫증 나기 충분할 정도로 오랫동안 기도와 노동의 일과를 따를 때, 수도원에서 '..

마태복음 26:26-35 / 인자와 진실은 영원하다

마태복음 26:26-35 26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27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28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것을 마실 그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30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갔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렉시오 디비나 2024.04.16

[제주안식15] 고독, 침묵과 친해지기

갑자기 걷는 시간이 많아지니 당장 무릎에 무리가 가나 보다. 무릎 통증이 생겼다. 해서 오늘은 숙소에서 늘어지게 쉰다. 쉴 때는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모처럼 독서량이 많은 오전이다. 아무래도 좁은 숙소에 종일 있으려니 몸이 늘어진다. 몸이 늘어지면 영혼도 탁해지는 것 같다. 불안감이 솔솔 몰려온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있어도 괜찮은 건지 싶다. 잠시 밖에 나가 걷는다. 바다로 나간다. 돌담 사이를 걷는다. 이 마을 저 마을 골목골목을 한량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느리게 걸을 때는 뒷짐 자세가 최고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손이 뒤로 돌아간다. 느리게 걸으면 자세히 보인다. 새삼 길가에 핀 꽃들과 여기저기에서 지저귀는 새들과 위험한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는 벌레들에 눈과 귀가 쏠린다. 눈..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제주 도착 다음날부터 비가 왔다. 신창리에 있는 무명서점에 갔다가 그냥 나오기 민망해서 아무 책이나 골랐다.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얇았다. 저자가 누군지 몰랐는데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마다 감상에 젖곤 했는데 제목이 좋았다. 그래서 골랐다. 언듯 보면 이유 없어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다 이유는 있다. 어제 오후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늘 오전에 다 읽었다. 주인공 요하네스가 태어나던 순간, 그의 아버지의 시선은 그 탄생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아침'이다. 이야기는 곧장 태어난 아기 요하네스의 죽음의 순간으로 이동한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는 요하네스가 죽음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다. 마침내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먼저 죽은 친구 페테르가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