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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영성이다(제임스 K.A.스미스)

신의피리 2018. 6. 9. 13:39

습관이 영성이다


요즘 제임스 스미스가 화제인가 보다. 해서 가장 쉬워 보이는 책부터 골라봤다. 논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다보니 이런 문장이 나온다.

“따라서 나라가 임하길 기도하셨던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뤄진 예배 공동체를 특징지어야 할 문화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은 계속해서 노력해 왔다.” (p.128)

뭐래는 거야? (똑똑한 나의 벗들, 성호나 준재가 원문 비교 하여 해설해주길 바란다.) 암튼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 이렇게 쉽게 해독이 안 되는 문장들을 읽어야 할 땐 참 골치 아프다.

제임스 스미스의 주장은 그리 신선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나’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이 나’라는 주장은 개혁주의 신학 밖에서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바다. (이렇게 신학은 늘 시대보다 느리다. 하물며 교회 교육과 예배는 더 느리고, 목사들의 설교는 하품만 나온다.) 이 전제로부터 저자는 갈망(욕망)의 세속적 패턴을 ‘예전’으로 읽어낸다. 하긴 소비사회는 벌써 거대한 종교가 되지 않았나.

암튼 저자는 매주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가정교육에서 ‘예전’ 전통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에서는 ‘예전’을 ‘형식’으로 보고, 나아가 인간의 노력과 자기 의의 발로로 해석하여 마치 구원을 우리 노력으로 얻으려는 카톨릭의 아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리 생각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개혁주의 예배와 교육은 무미건조한 낡은 전통으로 뒤처지고 말았다.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감성적 찬양과, 현실의 속살을 전혀 터치하지 못하는 교과서 읽기식의 동어반복 설교의 이율배반 속에서 겉돌고 헛돈다. 부모의 품을 떠나는 순간 그들은 순식간에 교회를 떠나고 만다.

음, 이야기가 조금 샌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죽은 형식적(으로 보이는) 예전을 어떻게 오늘 여기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만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귀로 듣는 말씀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참여하는 예전을 예배와 가정교육 안에서, 목회자들은 어떻게 기획하고 실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 내겐 관건이 아닐 수 없다.

1년 단위로 4계절이 무한반복 된다. 계절을 따라 교회력도 반복된다. 주일 예배도 매주 반복되고, 가정도 매일 매일 반복된다. 보호해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나날이 매순간 머물며, 성령의 새로운 길을 따라 욕망을 물리치고 살아가도록 돕는 건, 때론 ‘언어’가 아니라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전적 행동’일 때가 있다. 일상과 가정의 예전화, 그리고 품격있고 생명 있는 예전적 예배 안에 성령님의 생명이 깃들기를 갈망한다.

갈망하던 차에 <습관이 영성이다>를 만났다. 모방 - 반복 - 습관 - 영적인 근육 - 영성, 이 패턴이 단순한 공식이 아니라, 매주 예배에서 만나는 성령님의 임재이기를 소망한다. 그러고보니 기도문 한 문장을 정성껏 읽는 것도, 설교자의 손동작 하나도, 어쩌면 예전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