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2015/09 7

요셉은 우리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혔을까?

21교구 소식지 3호. 2015/10/04 요셉은 우리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혔을까? 20대 시절, 불현 듯 의문이 생겼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랑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너무 믿음이 좋았고, 너무 영웅적이고, 너무 영화적이었다. 나는 의심도 많고, 근심걱정도 많고, 분노할 때도 종종 있는데, 성경 인물들은 죄다 영적 거장들이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거물들이었다. 특히 요셉이 그랬다. 요셉은 17살 때 배다른 형제들의 질투 때문에 이집트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됐다. 이집트 경호대장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되어 금세 인정받았지만, 이내 주인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결과 강간미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흔들리지 않았다. 남 탓하지도 않았다.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았다..

기고/양화진 2015.09.30

권찰(勸察)

21교구 소식지 2호. 2015/09/20 권찰(勸察)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청년부 소그룹 이름이 ‘구역’인 것도 조금 촌스러웠는데, 구역장을 도와 구역을 섬기는 청년 리더를 가리켜 ‘권찰’이라 부르니 말이다. 사전을 찾아봤다. 권 : 勸 권할 권 / 찰 : 察 살필 찰권찰 : [기독] 장로교에서, 신자의 가정 형편을 살피고 찾아가서 만나 보는 직무.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 곰곰이 뜻을 음미하다 보니 한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께서 권찰이라는 직분을 섬겼던 내 어린 시절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구역 식구들 집을 자주 들락거리셨다. 혼자 계시는 어르신에게 쌀을 갖다 드리기도 하고, 누구 누가 아프다 하면 늦은 밤 홀로 부엌에서 중얼중얼 기도하곤 하셨다. 구역장 직분을 맡고나서는..

기고/양화진 2015.09.30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책

버들꽃나루사람들 2014년 11월호 원고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책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이 꼭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간청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책을 잘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내면과 됨됨이와 세계관을 고스란히 열어 보여주는 것과 같다. 내 신앙 여정에 작은 이정표가 됐던 책들이 진리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책 몇 권을 추천해 본다. 이현주, (생활성서사)이 책은 성경 읽기의 발상을 전복시킨다. 그가 소개하는 예수는 긴 금발머리와 조각 같은 외모에 카리스마 작렬하는 미남 영화배우와 거리가 멀다.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매끈하게 다듬어진 메시야 예수도 아니다. 저자는 시공간을 초월하..

기고/양화진 2015.09.30

아 어렵다! 정직

100통 2015년 10월 아, 어렵다! 정직 오늘 하루 정직해지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몇 시간이나 됐을까요?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언사를 곰곰이 되새겨보니 그 몇 마디 문장 속에 거짓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한 과거의 일을 옮기면서 나를 과대 포장하고 싶은 ‘과장’이 발생합니다. 내가 한 일을 지적하는 상대방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다가 은근히 내 잘못을 감추는 ‘축소’가 발생합니다. 남이 한 말을 마치 내가 한 것인 양 ‘도용’도 서슴치 않고,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칭찬할 때 침묵으로 타인이 받아야 할 칭찬을 ‘도둑질’합니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정직하기로 한 결심이 무너집니다. 내 입으로 쏟아내는 말마다 ‘거짓’이 묻어 있습니다. ‘아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 인정..

기고/양화진 2015.09.30

있는 모습 그대로

21교구 소식지 1호. 2015/09/13 있는 모습 그대로 내 나이 마흔넷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현재 기대수명이 78.5세(2014년 12월발표)라고 하니 반환점을 돈 셈이다. 요샌 죽는 게 그다지 두렵지가 않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짧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 마흔 즈음부터 세월의 속도가 제트엔진을 단 듯하다. 1년이 짧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의 속도와 성숙의 속도는 반례비하나 보다. 성장의 대한 마음의 몸부림보다 안주에 대한 몸의 욕구가 더 커졌다. 20대 때 쓴 일기, 30대 때 쓴 설교문을 간혹 다시 읽어보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굳이 내 글을 봐서만이 아니다. 20대 청년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냥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

기고/양화진 2015.09.13

2015년 9월 13일 4부예배 기도문

2015년 9월 13일 4부예배 기도문 부름의 말씀 후 기도 부름의 말씀: 시편 108편 3-5절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주님, 고개 들고 예배드릴 자격이 있는가, 찬송 부르기에 합당한 입술인가, 자문해봅니다.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분주한 일상에 매몰되어 주님의 이름을 까맣게 잊고 살아온 나날이었고, 말씀을 따르기보다 이익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데에 여념 없는 속된 나날이었습니다. 나를 칭송해주는 사람만 친절히 좇고, 내게 선물해주는 이들에게만 ‘감사’하기를 계산하며 살아온..

포옹과 키스 사이

100통 2014년 4월호 포옹과 키스 사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데이트와 결혼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연애강의는 호응이 좋은 편입니다. 모든 청춘남녀의 초미의 관심사라 그렇겠지요! 그런데 강의 도중 한순간 공기의 흐름이 확 뒤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십중팔구, 그 주제는 스킨십! ‘스킨십’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이 단어는 엄청난 파동을 일으켜 청중들의 동공을 최대 사이즈로 확대시키고, 잠자며 놀던 체세포들을 일시에 깨워 활성화 시키는 놀라운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키스 해보셨나요?’ (입술을 슬쩍 움직이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결혼 전에 키도 해도 되는 걸까요?’ (중세시대 사제들이나 할 법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

기고/양화진 201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