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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교회, 새자리, 새책상
어떻게 자리를 꾸밀까 고민끝에 주석을 좌우에 꽂아두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나는 설교 할 일이 별로 없다.
수요설교 1년 1회, 새벽설교 1달 1회, 금요기도회 1년 2회, 2030예배 3개월 1회.
도합 16회! 그리고 심방할 때마다 5분여 정도 설교를 할뿐이다.
책상에 앉아 전화를 하고, 행정문서에 기입하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이런저런 일에 몸으로 봉사한다.
나는 누구인가?
자칫 교회일을 회사일하듯 성과위주의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자신을 목회자, 그것도 '설교'를 매개로 성도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규정하고 싶다. 아니 좀 더 좁혀서 나는 설교자이기를 원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가 가장 힘겹지만, 또한 설교를 할 때가 가장 영광스럽고, 설교를 할 때 가장 내 자신이 귀하게 느껴진다. 나는 설교자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일부러 일 년 중 못 볼 책이 수두룩하겠지만, 각종 주석서들을 내 사방에 꽂아두었다.
말씀을 맡아 교회를 섬기라고 부름받은 자기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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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피리 2012/02/19 10:52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눈이 내리면 100주년기념교회 교역자들은 새벽 5시에 모여 묘원 경내에 쌓인 눈을 쓴다.
묘원 눈치우기는 교역자들의 주요한 일이다.

2005년 7월 10일, 교회 창립예배 때 담임목사님은 청빙을 수락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양화진 묘지기'로 규정했다. 20여년간 양화진묘원 담벼락 옆에 살면서 묘원을 뜨락 삼아 거닐고 기도하고 사색하며 그분이 품었던 묘원에 대한 애정은 분명 남다르기에, '양화진 묘지기'란 말에서 풍기는 깊고 무거운 역사적 책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부교역자들도 종종 기도와 설교 중에 자신을 '양화진 묘지기'로 묘사한다. 그 때의 그 단어의 무게감은 담임목사님과 비교할 수 없다. 나 역시 이 곳 양화진과 전혀 별개의 삶을 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이 교회 교역자가 된 까닭에 아직 '양화진 묘지기'란 말을 실감하지 못한다.

참 희안한 것은 두 달 넘게 생소하고 낯설기만 한 이 교회 속에 여전히 낯선 이방인처럼 서성거리다가도, 새벽 살포시 쌓인 눈을 치울 때면 100여년의 선교 역사의 격랑 소리가 바람을 따라 스쳐지나가는 것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마당쇠처럼 큰 빗자루로 눈을 써~억 써~억 쓰는 것이 내 임무일지언정, 이 순간만큼은 이 조선 땅의 목회자라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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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피리 2012/02/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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