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바람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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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 어떻게 살(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다소 거칠고 매서운 뉘앙스가 풍기는 마태복음 25장 설교에서 나는 이 두 질문을 내내 던지게 된다. 인자가 오는 날이란, 언젠가 나는 죽는다는 말로 읽힌다. 그날이 언제일지 나는 모른다는 말이다. 인자가 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은 채, 오늘 제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나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가장 나쁜 삶으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죽을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은 '메멘토 모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하여 하루하루를 죽음의 그림자에 눌려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도리어 오늘이 소중한 것이다. 매순간이 빛나는 오늘이 되도록 사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 2024.04.14

[제주안식13] 좁고 작고 낮은 수준을 받아들이며

낮부터 날씨가 맑아질 예정이다. 구름이 없다. 이제 금악오름에 오를 때가 왔다. 서둘러 버스 시간을 알아 본다. 12시다. 점심은 나가서 먹는다. 두모리사무소 앞에서 785번 간선버스를 탄다. 주말이라 운행 횟수가 적다. 이용객도 적다.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이러다 버스회사 문 닫는 거 아닌가. 이렇게 승격이 적으면 적자 날 텐데... 금악리에서 식사를 한다. 백종원 골목식당에 나왔다는 광고 때문인지 인근 3~4개 식당에 손님들이 가득이다. 이제 금악오름을 향해 걷는다. 이효리가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유명해졌다고 하나, 아래에서 보니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이다. 금악오름에 가까이 다가가자 패러글라이딩이 보인다. 멋있다. 고개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는다. 공중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마태복음 26:1-13 /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

마태복음 26:1-13 1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셨을 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가 아는 대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인데, 인자가 넘겨져서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3 그 즈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모여서, 4 예수를 속임수로 잡아서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5 그러나 그들은 "백성 가운데서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명절에는 하지 맙시다" 하고 말하였다. 6 그런데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는,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8 그런데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분개하여 말하였다. "왜 이렇게 낭비하는 거요? 9 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

렉시오 디비나 2024.04.13

[제주안식12] 수다와 보행

이민재 목사를 만났다. 제주에 살고 있는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다니던 모교회 1년 후배다. 장신대를 나와 통합측 목사가 됐고, 나는 무늬만 고신 목사가 됐다. 청소년 시절 이후, 한참 세월이 지나 다시 연락이 됐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한 십여 년 전에 제주로 내려왔다. 서귀포 외곽 마을에 터를 잡고 목회를 한다. 한때 동네 주민들의 귤 농사를 내륙으로 연결해 주는 일도 시도해 보았고, 나는 그를 통해 맛있는 귤과 한라봉을 저렴하게 몇 차례 구매한 적도 있다. 그와 내가 있는 곳 중간 쯤인 모슬포항 근방에서 만났다. 나는 한경에서 버스 타고 가고, 그도 서귀포에서 버스 타고 왔다. 참 대화할 맛이 나는 친구다. 그는 나보다 좀 더 진보적이다. 독서량도 많고, 아주 시원~한 욕도 찰지..

마태복음 25:31-46 / 보잘 것 없는 이들을 향한 긍휼

마태복음 25:31-46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

렉시오 디비나 2024.04.12

[제주안식11] present is present

초대를 받았다. 낄 자리가 아니지만,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니 염치 불고하고 가겠다 했다. 이성실 목사님이 교인 댁으로 심방 가는데 어쩌다가 심방대원이 됐다. 권사님은 원래 안양에서 태어나서 50년 넘게 사셨다 한다. 남편과 제주에 왔다가 애월에서 마당이 있는 180년 된 작은 집과 사랑에 빠졌다. 결국 집을 사서 눌러앉았다. 권사님은 유쾌한 분이다. 먹는 것을 사랑한다.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젊은 듯한데(60대 초중반?) 2년여 전 남편이 암으로 쓰려졌고 먼저 천국에 갔다. 동네 골목 맨 끝자락에 자리한 그 작은 집에서 2년여를 혼자 사셨다고 한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랫동안 남편과 함께 자던 침대에 눕지를 못하고 작은 방에서 잤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마태복음 25:14-30 / 영적 나태병에 걸리면

마태복음 25:14-30 14 "또 하늘 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

렉시오 디비나 2024.04.11

[제주안식10] 同行

정정조 집사님이 방문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11시간 동안 내게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주셨다. 사려니숲을 두어 시간 걷고, 성산일출봉을 조망하며 올레길 2코스 일부 구간을 걸었다. 내가 있는 서쪽과는 또 다른 풍광이고, 좀 더 이국적이다. 오랜만에 섭지코지도 가보고,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하도-월정을 지나 함덕해수욕장까지 왔다. 늘 자동차를 타고 그냥 지나쳤던 구석구석을 정성껏 안내하셨고, 함덕해수욕장 가운데 있는 델문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했다. 일부러 오셨다. 출장 오셨다가 그냥 가도 되는데, 일부러 하루 시간을 내셔서 오셨다. 내가 차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니, 일부러 제주 동쪽으로 안내하셨다. 반나절만 안내하고 가셔도 괜찮은데, 일부러 저녁까지 동행해주셨다. 일부러 시간..

마태복음 25:1-13 / 기름을 준비하는 삶

마태복음 25:1-13 1 "그런데,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서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다. 5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7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다. 8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

렉시오 디비나 2024.04.10

[제주안식9] 참소하는 목소리 vs. 현존하라는 목소리

색다른 아침을 맞고 싶었다. 차를 반납하는 날이니 어차피 제주시로 가야 한다. 차를 가지고 새미은총의동산으로 간다. 어제 오후 아내와 가려고 했는데 아내 몸이 안 좋아 가지 못했다. 혼자 가서 기분이라도 낼 겸 출발한다. 아침 8시라 아무도 없다. 혼자 드넓은 은총의 동산을 거닌다. 2천 년 전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예수님의 그 죽음이 어쩌다 내 인생과 만나게 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다.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은 내게는 더더욱 신비다. 내 몸과 마음이 정결하게 되기를, 오로지 하나님의 임재에 머물고 하나님을 아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기를, 그래서 이 괴로운 슬픔과 외로움이 잊히기를. 실은 은총의동산보다도 카페이시도로가 내 진정한 목적이다. 8:30부터 카페가 오픈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한국 가톨릭..